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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5시찰] 새샘교회이야기 - 1

김진수 2022-07-19 (화) 18:53 3년전 897  

논산 장로교회의 모()교회로

기장의 전통을 지키며

개척자의 길을 걸어 온 새샘교회 이야기

 

지금도 논산시의 구 도심지에 남아있는 새샘교회는 일제 강점기의 한국역사와 함께 논산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장로교회의 역사를 품고 있는 논산의 유서(由緖) 깊은 교회중 하나이다. 새샘교회는 당시 논산의 감리교회를 출석하던 이근석, 임준식, 김창호, 이보형, 이근행, 윤호봉 집사 등 50여명이 1948920논산읍 화지동 125번지에서 이춘원목사 인도로 논산중앙교회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논산중앙교회의 창립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감리교선교지역이었던 논산에 첫 장로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장로교회의 불모지였던 논산에서 장로교회를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교회 창립위원들은 당시 서천 부여지역의 교회들을 돌보고 있던 장로교의 마로덕(馬路德, Luther Oliver McCutchen) 선교사와 충남지역 장로교회 개척자였던 이춘원 목사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의 지도와 도움으로 논산중앙교회를 창립할 수 있었다. 둘째는 논산중앙교회설립을 주도했던 이근석, 임준식 집사 등이 자주적 민족의식이 강한 조선신학교출신 목회자들과 교류하며 교회를 세웠고, 훗날 예장과 기장의 교단분립 때, 대전노회(논산, 공주, 조치원, 대전지역)에서 유일하게 강경신흥교회(, 강경교회)와 함께 기장에 속한 교회로 새 출발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논산 중앙교회는 논산지역의 지도력이 있는 평신도들에 의해 창립되었을 뿐 아니라 1949101, 독립 운동가였던 이근석 장로에 의해 세워진 논산지역 최초의 개신교 기독교사학, “기민(基民)중학교를 통해 논산지역사회에 많은 정신적, 신앙적 영향을 끼치는 교회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새샘교회는 그 뿌리인 논산중앙교회의 창립 때부터 평탄하고 쉬운 길 대신 고독하지만 항상 새롭고 창조적인 길을 여는 개척자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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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로덕 선교사                  이춘원 목사                      이근석 장로                        임준식 장로

            

논산중앙교회 설립과 부흥(1948 ~ 1952)

 

초대 당회장이었던 이춘원 목사의 뒤를 이어 19495정영삼 목사2대 목사가 되었고 그해 10월 1일 이근석집사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후대교육을 위해 "기민중학교"를 세웠다. 1951년 논산중앙교회는 논산시 반월동 160번지의 건물로 교회를 이전했다. 교회는 계속 부흥되었고 교회 창립에 앞장섰던 이근석, 임준식 집사를 1951년 논산중앙교회 제 1대 장로로 임직했다. 그리고 그해 1212일 광석면 득윤리에서 출석하던 교인들의 요청에 따라 논산중앙교회는 득윤리교회를 지교회로 분립하여 세우고 윤호봉 집사를 파송하여 득윤리교회를 섬기게 했다.

 

19529,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영삼 목사는 논산중앙교회를 떠났고 교회는 잠시 지도자 없는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마침 반공포로로 수용 중이던 임한상 목사가 미군들의 도움으로 외부출입을 하면서 논산중앙교회에서 예배인도를 했고 이북출신인 임 목사가 예배인도를 하면서 논산지역으로 피난해 온 이북 장로교출신 교인들이 일가친척 고향소식을 듣기 위해 논산중앙교회로 몰려들었고 반월동 예배당은 증가하는 교인들을 수용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교회는 1953년 봄, 이보형 집사(기민공민학교 교사) 소유 논산시 반월동 108번지 242평을 예배당신축 부지로 매입하고 예배 장소를 기민중학교로 옮긴 후, 반월동 108번지 신축부지에 예배당신축을 서둘러 시작했다. 준비된 것은 부족했지만 온 성도가 달려들어 헌금을 드리고, 각자의 몸으로, 가진 건축기술로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군산의 적산 창고를 해체한 돌을 옮겨와 벽을 쌓고 지붕은 깡통으로 만든 함석으로 덮었다. 그 어려운 시절, 성도들의 눈물과 땀으로 첫 번째 예배당은 건축됐고 1953523일 전쟁이 채 끝나기 전, 헌당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1953617논산중앙교회는 반공포로 석방으로 자유의 몸이 된 임한상 목사를 3대 목사로 청빙했다.


3260c5edf54031688c233e0ca4314163_1658274377_65.jpeg2대 정영삼 목사        논산 최초의 기독교사학 기민중학교            개척한 득윤리교회           피땀으로 건축한 첫 예배당 

 

교단 분열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논산교회(1952 1953)

 

논산중앙교회가 교회설립과 함께 성장하던 시기에, 충남노회는 두 노회(충남, 대전)로 분립했다. 충남의 서해안농어촌지역(서천, 보령)과 금강유역에 위치한 부여를 중심으로 교회들이 큰 성장을 이루면서, 노회의 중심세력을 형성했지만, 상대적으로 충남내륙의 도심지역(대전, 공주, 논산, 조치원)지역은 그 성장이 미흡하여 노회의 변방에 머무르게 되면서 충남노회는 19523월 제 8회 정기노회에서 미래 성장가능성이 큰 충남내륙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회분립(충남노회와 대전노회)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논산중앙교회는 새롭게 신설된 대전노회(대전, 논산, 공주, 조치원지역)소속교회가 되었다.

 

충남노회가 두 노회(충남, 대전)로 발전적으로 분립했던 시기에 총회는 뼈아픈 교단분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2429일에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37회 총회는 성서해석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신학대학 교수였던 김재준 목사를 면직했다. 무엇보다 37회 총회는 노회권한인 목사의 면직을 노회의 재판 없이 불법적으로 결의하고, 성서해석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다른 교수에게 잠시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신학대학 출신 교역자 자격을 강제로 박탈시키며, 무엇보다 이에 양심적으로 동조하는 동역자들의 처단까지 결의하는 등, 한국교회사에서 씻지 못할 과오를 남기고 말았다. 서로의 차이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나, 신학적인 연구, 성찰 없이 다만 정치적으로 다수의 세력을 규합하여 얻은 교권의 힘으로 나와 다른 입장에 선 동역자들을 처단하여 몰아낸 사건이 장로교회 역사에 일어난 것이다.


이에 제 37회 총회의 불법적 결의에 반대하며 그 결의를 바로 잡으려 했던 호헌총회 측은 19529월 대구에서 모여 총회 불법결의 시정헌의를 결의하고, 19534, 38회 총회에 시정헌의 안을 제출했으나 결국 그 시정 안까지 거부되면서 1953610, "호헌총회" 측이 별도의 총회 소집함으로 기장과 예장으로의 교단 분열이 이루어졌다. 교단분열은 각 지역의 지 교회들에게 엄청난 파국을 불러왔다.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교인들이 교회의 정통성과 재산의 소유권을 놓고 분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충남노회는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담임목사의 입장에 따라 자유로 수습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규태 목사는 그 원칙에 가장 충실하게 따른 교회는 논산교회였다.“고 회고했다. 임한상 담임목사를 제외한 ()당회원, 교인 수 까지도 기장 측이 많았음에도 이근석, 임준식 장로를 비롯한 교인들은 모든 교회 재산을 포기하고 빈손으로 나와 195310한국기독교 장로회 논산교회를 개척하여 세웠기 때문이다. 논산교회 교인들이 교회 분열 시에 보인 태도는 많은 교회들이 분립과정에서 교인들 간의 갈등과 오랜 법적 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전례에 비추어 교회분열의 모범적 사례로 회자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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