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교회이야기

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3시찰] 충일교회이야기 - 2

김진수 2022-01-17 (월) 19:29 4년전 723  

새 출발 - 만지교회에서 충일교회로 출애굽한 이야기(1988 ~ 2007)


1988년은 만지교회에서 충일교회로 새 출발을 시작한 기념비적인 해이다. 교회를 자신의 소유물로 삼아온 유경신 전도인의 전횡에서 벗어나 신승배집사 외 25명이 새로운 충일교회로 새 출발을 한 해이기 때문이다. 1988년을 충일교회의 새 출발 원년으로 잡은 것은 대전노회록의 기록을 근거했기 때문이다. 43회 대전노회 정기회록(1988) 시찰보고에는 만지교회가 정상적으로 보고되어 있는 반면 제 44회 정기회 노회록(1989)에는 사고교회로 기도를 바라오며라는 만지교회보고가 나온다. 이는 충일교회로의 새 출발이 만지교회 시찰보고가 정상적으로 보고된 1988년 정기노회 이후로부터 시찰보고에 누락된 1989년 정기노회 이전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정황상 노회보고가 최소한 노회가 열리기 2개월 전에는 서기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988년을 충일교회가 만지교회로부터 출애굽한 해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1988년은 25명의 교인이 단순히 만지교회에서 이탈해 나온 날이 아니다. 유경신 전도인이 부임한 1975년부터 왜곡되고 변질되었던 만지교회를 유경신 이전, 본래의 교회로 회복한 날이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25명의 교인들은 1988년부터 유광수씨 비닐하우스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대전노회는 유경신의 만지교회로부터 출애굽하여 비닐하우스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25명의 교인들과 다시 접촉하기 시작했다. 대전노회 정기회제 45(1989) ~ 47(1991) 노회록에는 "만지교회가 사고교회가 되었으나 대전노회가 이를 품고 그 수습에 나섰으며 정창수(위원장) 김봉환, 홍주완, 이덕기, 고석구 목사를 수습위원으로 세웠다" 고 기록했다. 마침내 그 25명의 출애굽 성도들은 본 교단 품으로 돌아왔다. 1991, 수습위원회는 먼저 노회의 허락을 받아 만지교회에서 출애굽한 25명의 성도들을 지도하고 이끌어줄 교역자로 '이충원 전도사'를 파송했고 노회는 수년간 비닐하우스에서 예배드리던 충일교회가 새 예배당을 건축할 때 건축비 200만원을 보조하는 등, 충일교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일에 적극 동참했다. 1992317, 대전노회 만지교회 수습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교인 수는 장년 30, 중고학생 18, 어린이 25, 집사 8, 구역장 2명이며, 292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예배당건축도 순조롭게 이루어져 콘크리트 벽돌 기초위에 조립식건물 40평을 건축비 1,200만원으로 건축했다.

 

만지교회에서 출애굽하여 새 출발을 시작한 충일교회는 빠르게 정상을 회복했다. 이충원 전도사(1992~ 1996년 재임)1992년 이제 막 새 교회로 발돋움하는 충일교회에 부임하여 교인들을 안정시키고 비닐하우스 예배처에서 예배드리던 교인들과 함께 조립식 예배당과 사택을 건축하는데 힘을 쏟았다. 1992317일 대전노회 제 48회 정기회 시찰보고에 따르면 충일교회(이충원 전도사)는 교회를 건축하고 있으며 40여명의 성도로 은혜스럽게 부흥되고 있다고 보고되어있다.


8254f33efa21d856465f3da4b269d92d_1642415101_53.jpg           충일교회로 새 출발하는데 앞장선 신승배 장로() 충일교회 1대 목회자 이충원 전도사()첫 조립식 예배당()


충일교회의 첫 목회자였던 이충원 전도사는 1991년 부임하여 1996년 새 임지를 찾아 떠났고 김환철 목사(1997~ 200775)가 뒤를 이어 새 목회자로 부임했다. 한국신학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도권에서 목회를 하던 김 목사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충일교회에 부임한 것은 신병으로 심신이 약했던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김 목사는 부임 후 10여 년 동안 교회의 특별프로그램이나 대외 행사를 지양하고 조용히 교회의 기본인 예배와 설교에 충실했다. 본래 학구적이었던 김 목사는 충일교회에 재직하던 2002, “성경으로 본 메소포타미아 고대제국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병약한 몸은 성도들의 삶 속에 들어가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영적 리더십으로 성도들의 삶을 이끌어갈만큼의 건강을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약해졌고 한 시간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병은 깊어져갔다. 김 목사는 목회 10년째인 200775일 사임서를 내고 교회를 떠났다. 김 목사 재임 시, 온 성도가 함께 조금씩 모아놓은 건축헌금 3천만 원은 후일, 교회증축과 교육관, 식당건축에 필요한 종자 씨가 되었다. 


부흥을 이룬 늦 이삭 교회이야기(2007 ~ 현재)


충일교회는 2007년 제 3대 목회자 이태세 목사의 부임과 함께 교회의 영적 부흥과 성장의 시기를 맞았다. 이 목사는 충일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목회자로 보인다. 이 목사는 충일교회와 인접한 농촌교회인 송학교회 출신으로 오랫동안 모 교회를 평신도와 장로로 섬기면서 지역의 형편과 교회 성도들의 필요를 잘 알고 있었고 시무장로로 담임목사 곁에서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일조한 경험도 있어서 고령의 교인들이 대부분인 농촌교회를 섬기는데 필요한 목회적 소양을 이미 갖추고 있는 목회자였다. 신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삼일교회 목회를 시작했고, 신학교 졸업 후 대전노회 현암교회에서 2년 동안 목회했다. 그리고 충일교회에서 목회의 부름을 받아 섬기면서 그의 목회는 꽃을 피웠고 열매를 맺었다.


8254f33efa21d856465f3da4b269d92d_1642415243_95.jpg

이태세 담임목사 취임식() 동수원교회와 함께한 주민 한마음잔치() 충일교회 세례식()

 

이 목사는 먼저 연로한 노령의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겨울에는 보온이 잘되고 여름에는 시원하도록 예배실을 고쳤고, 교회 안에서 서로 쉼을 얻고 교제할 수 있도록 교육관을 건축했으며, 예배 후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눌 수 있도록 식당까지 신축했다. 충일교회 67년 역사에 이렇게 놀라운 교회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본 적이 없어 보인다. 교인 중에서 가장 젊은 이 목사 내외가 항상 팔 걷어 부치고 교인들을 섬겼다. 이 목사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만지리 1,2,3,4리와 임천면 발산리, 충화면 복금리 등 여러 곳에 산재해있는 연로한 교인들을 위해 25인 버스를 운행했고 두 교회(만지, 충일)의 갈등으로 나빠진 교회에 대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애경사에 부지런히 참석하고 동네행사에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항상 교인들과 함께 호흡하고 주변의 이웃들과 친밀힌 관계를 맺고 산다. 20111029일 충일교회는 교회설립 후 처음으로 대외적인 교회행사를 열었다. 이태세 목사의 담임목사 취임, 교회 지킴이, 신승배 집사의 장로 임직, 그리고 권사 임직식을 거행했다. 긴 세월동안 많은 위기를 이겨내며 고난 속에서도 기적처럼 생명력을 이어온 교회, 그리고 그 느즈막에 풍성한 열매를 맺은 늦 이삭(晩穗)’교회가 된 것이다.


8254f33efa21d856465f3da4b269d92d_1642415314_61.jpg

이태세 목사의 취임()과 평생을 함께 헌신한 이태세 목사 부부

 

충일교회에 충성한 일꾼들


충일교회에 많은 충직한 교인들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 오랫동안 교회를 신실하게 섬겨 오신 두 분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자 한다. 한 분은 신승배 장로이다. 신 장로의 삶은 교회의 첫 출발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릴 때, 교회 초창기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고 매일 예배를 인도하러 온 지석교회 황오일 장로에 대한 기억도 아직 살아있다. 그는 긴 세월동안 교회를 지켜왔고 교회가 그 본질을 잃고 그릇된 길로 갈 위기에 있을 때 충일교회로 새 출발하는데 앞장섰다. 또 한 분은 이명대 권사이다. 이 권사는 교회의 어머니 같은 분으로 쉼 없이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권사로 통한다. 항상 그의 기도로 온 교회가 따뜻한 은혜의 동산이 된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도 앞장 서서 교회의 교육관과 식당을 건축할 때도 늘 기도로 헌신했고 앞서서 교회성구와 비품을 기증했다.

 

충일교회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직 주님을 향해 한 마음으로 섬기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교인평균 연령이 80세에 이르지만 주님을 향한 믿음이 늦 이삭처럼 이제 막 발아하기 시작한 영적 나이가 젊은 청춘교회이다. 만지리 마을에 빛을 발하는 교회로 아름답게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한국기독교장로회대전노회    충남 부여군 부여읍 계백로 402 (쌍북리)
대전노회 서기 이긍복 목사
(전화 : 010-8890-3353)    주소 : 33204 충남 부여군 옥산면 홍연로26번길 11-7

COPYRIGHT(C) 2021 ALL RIGHTS RESERVED. Provid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