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이야기 12 – 충일교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산 교회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출애굽 한 교회
충일교회(구, 만지교회)는 교회의 첫 시작(1935년)과, 새로운 시작(1954년), 그리고 새 출발(1988년)의 역사가 존재한다. 87년 역사 가운데 세 번씩이나 새롭게 시작할만큼 지난(至難)한 위기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충일교회는 항상 그 이름처럼 위기의 순간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잘 극복해 왔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베일에 가려있었던 '만지교회의 뿌리(1935년)'에 대한 소중한 사료를 “지석교회 100년사” 속에 남겨두셨고, 만지교회의 새로운 시작(1954년)에 대한 자료는 설립초기부터 깊이 관여해 온 충남노회 원로, 장만용 목사를 통해 복원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충일교회의 첫 시작 - 선사(先史)시대(1935 ~ 1954)
“지석교회 100년사”에 의하면 “1935년 초봄, 복금리에 사는 유홍렬의 모친(50세)과 정씨(30세)가 지석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그 해 여름에는 옆 마을 만지리에 사는 손선화 여인(59세)이 온 가족 6명을 데리고 지석교회에 나왔다. 불과 4-5년 사이에 지석교회로 출석하는 복금리와 만지리 교인은 20여명으로 늘었고 이에 1939년 4월 14일 복금리, 만지리 교인들은 김갑룡(당시 23세, 후에 복금교회 장로)을 중심으로 지석교회에서 분립하여 ‘복금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만지교회의 첫 신앙의 뿌리는 1935년 지석교회를 다녔던 ‘신선화 여인과 6명의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충일교회 전경
복금교회가 분립한 1년 후, 1940년 4월 30일 당시 지석교회를 담임했던 이재봉 목사가 복금교회 교인 16명의 이명증서를 발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세례교인–남)김갑용 여)김수헌, 정상열, 유인열, 전창옥, 박기순, 이소희, 노인순 등 8명
* 학 습 인–남)유병일 여)신은금, 지영복, 백금순, 오순옥, 오명자, 안성례, 송영희 등 8명
새로운 시작 - 만지교회의 설립이야기(1954. 8. 20 ~ )
복금교회가 지석교회에서 분립될 때 만지리에 살던 교인들이 복금교회로 다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만지교회가 설립될 때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복금교회와의 연결고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만지교회는 복금교회에서 분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54년 8월 20일, 만지교회가 처음 설립될 당시 만지리에 교인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지교회 창립에 관여했던 장만용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윤형중 장로(예장 통합 윤석주 목사의 父)가 정규태 목사를 찾아와 개인자금으로 만지리에 교회설립 하려는 의지가 있으니 전도 집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나영수 목사, 장만용 목사(당시 현미교회 전도사) 등이 1954년 8월 20일 만지리 도로변 신재관씨 주막에 숙소를 정하고 마당에 차일을 치고 전도 집회를 열면서 만지교회 창립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날(1954년 8월 20일)이 만지리교회가 창립된 날이라는 증언이다. 그러나 단 하루의 ‘만지리 도로변 전도 집회’로 인해 복음의 황무지에서 만지교회가 시작되었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그동안 복금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거나 혹은 교회출석을 중단하고 있었던 소수의 만지리 교인들이 '만지리 도로변 전도 집회'에 참석하였을 것이고 그들과 함께 그 날 복음을 처음 접하고 회심한 사람들이합세하여 만지교회가 창립된 것으로 보인다.

만지교회 창립에 징검다리가 되어준 고(故) 정규태 목사(좌), 울타리가 되어준 장만용 목사(중) 밑거름이 된 황오일 장로(우)
만지교회 예배 인도자 황오일 장로와 충성된 일군들(1954 ~ 1975)
만지교회는 창립된 1954년부터 1975년 전임교역자가 부임하기까지 무려 20여 년 동안 주변 교회 목회자들, 전도인들이 먼 길을 걸어와 예배를 인도했다. 찾아오는 예배인도자가 없을 때는 교인 중에서 예배를 인도했다. 홍산교회의 성명미상의 전도인은 교회에 예배를 인도할 사람이 없을 때마다 찾아와 예배를 인도해주었고, 건너 마을 복금교회 박노생 전도사(현재, 새샘교회 원로장로)는 1년 넘게 본 교회 예배 인도 후 먼 길을 걸어와 만지교회 예배를 인도해 주었다. 그 외에도 지역의 교역자들, 전도인들, 교회 성도들 중에서 만지교회의 예배를 인도했다. 교회를 담임하는 교역자 없어도 그래도 교회는 생존했고 조금씩 성장했다. 주님이 친히 그의 피로 사신 교회는 사막에서도 싹을 틔우고 자란다.
그러나 그중 누구보다 만지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한 결 같이 예배인도자로 헌신한 분이 있다. 지석교회 초대장로인 황오일 장로다. 황장로는 1933년 서리집사가 되면서부터 교역자가 없는 지석교회의 예배 인도를 시작했고 장로임직 후에도 신실하게 교회를 섬겼다. 황 장로는 배운 것이 없고 머슴을 살만큼 집안이 가난했지만 그의 실천적 신앙이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의 진실한 체험적 설교가 은혜가 되었다. 1962년 지석교회가 첫 목회자로 김사겸 목사를 청빙하게 되었을 때, 황 장로는 자원하여 예배인도자가 없는 교회의 예배인도를 맡아 섬기기로 작정하고 만지교회를 맡아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1967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6년여 동안 지석리에서 만지리까지 6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다니며 새벽예배를 비롯하여 모든 예배를 신실하게 인도했다. 황 장로의 신실하고 헌신 된 삶은 지금까지도 충일교회의 여러 교인들의 마음 깊이 큰 감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교회이야기(1975 ~ 1987. 4)
만지교회가 설립된 후, 20여 년 동안 교역자 없이 외부 인사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당회장이 일 년에 몇 차례씩 방문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동안 교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충남노회록 제 31회 정기회의록(1975년 4월 15일)에 “만지교회는 교역자 없이 심히 미약 중에 있사오며”라는 남부시찰보고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시기에 만지교회가 얼마나 큰 어려움가운데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만지교회의 초대 교역자 청빙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1975년 12월 경, 만지교회 신승배 집사(현, 충일교회 시무장로)가 기도하기 위해 찾아간 ‘영천기도원(보령 소재)’에서 설교하고 있던 ‘유경신 전도인’을 만났다. 설교가 은혜롭고 감동적으로 들렸고 순간, 저런 분을 만지교회의 목회자로 모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고 한다. 예배 후 신 집사는 유 전도인을 만나 오랫동안 교역자가 없는 만지교회를 목회할 의향을 물었고, 유 전도인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집으로 돌아온 신 집사는 교인들에게 유 전도인 이야기를 전했고 온 교우들은 모두 유 전도인 청빙에 찬성했으며 유 전도인은 즉시 만지교회로 부임했다. 충남노회록(제 32회 정기노회록, 1976년 4월 22일)에 “유경신 전도인 인도로 여전하오며”란 시찰회 보고내용을 보면 유 전도인 부임일자는 대략 1976년 초에서 4월 초경으로 보인다.
헌신적이며 열정적이지만 동시에 신비적인 영성을 지닌 기도원 사역자 출신 유경신 전도인은 오랫동안 교역자 없이 침체해 있었던 만지교회 성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데는 적합한 사역자였다. 그러나 말씀으로 양육하는 성숙한 교회, 총회 헌법과 교회규범을 따르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데는 처음부터 그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사역자였다. 목회 초기에는 교회가 활성화 되고 부흥되었다. 청장년교인이 4-50여명이나 되고 그 중 젊은 청년들만 15명가량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인 수가 많아지면서 유 전도인의 개인적 욕심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만지교회를 교단이나 노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개인소유의 기도원처럼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는 노회나 시찰회, 당회장과의 관계를 끊고 그 지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1981년 9월 30일, 유 전도인을 신뢰하며 따르는 교인들을 설득하여 “만지교회 교단탈퇴성명”을 발표했다. 당회장 장만용 목사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1982년 4월 13일 충남노회 제 38회 정기회에서 만지교회 수습청원을 제출했고 노회는 이를 위해 수습전권위원 3인, 나영수, 안기중, 장만용 목사 3인을 세웠다. 1983년 4월 12일 충남노회 정기회 노회록에 따르면 수습위원들은 오랫동안 유 전도인을 설득했으나 끝내 그 결심을 돌이키지는 못했고 다만 교회 재산을 총회 유지재단에 등록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1984년부터 88년까지의 충남노회 및 대전노회록에는 여전히 “유경신 전도인 모시고 은혜 중이오며”라는 만지교회 보고가 나온다. 교회 재산은 교단 소유로 있고, 목회자와 교인은 우리 교단을 탈퇴한 상태로 여전히 충남노회 안에 있는 교회, 죽었으나 살았고 살았으나 산 것도 아닌 기이한 모습으로도 만지교회는 5년을 생존했다. 만지교회는 죽었다! 그러나 다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