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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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이야기

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4시찰] 비정교회 이야기 -1

김진수 2022-05-10 (화) 18:19 3년전 889  

새들이 날아오는 마을(飛洞),

소나무 숲, 정자(松亭) 같은 교회

 

부여군 임천면 비정리(飛亭里)는 남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서북쪽의 일부 지역을 제하고는 넓은 들녘이 펼쳐져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강가에 마을이 있으므로 개뜸, 들새가 많이 날아드는 마을이라 하여 비동(飛洞), 옛날부터 마을에 소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송정(松亭)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비동리, 초동리, 내동리, 송정리를 병합하여 비동(飛洞)과 송정(松亭)의 이름을 따서 비정리(飛亭里)라 하고 부여군 임천면에 편입되었다. 비동마을과 송정마을을 아우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비정교회는 이름 그대로 소나무 숲에 자리잡은 멋스런 정자(亭子)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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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마을, 소나무 숲속에 세워진 비정(飛亭)교회(), 면사무소 앞에 있는 소나무 보호수()


윤형중 장로와 비정교회의 창립이야기(1953~ 1956)

 

비정리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은 6.25 전쟁 직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였다. 이미 부여지역에는 1900년 초부터 복음 전도의 바람이 불어와 첫 장로교회인 초왕(오량)교회(1902)를 비롯해서 청포(1905), 오덕, 지석(1906) 교회 등이 세워졌고 전쟁이 끝나면서 부여지역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각동리마다 찾아다니며 복음 전도에 박차를 가했다. 오량교회 윤형중 장로는 1953115일 비정리(송정마을)에 찾아와 사람들을 모아 전도하며 천막교회를 세웠고 그해 겨울을 지나 초가삼간을 매입하여 비정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비정교회가 1956310일 노회의 설립공인을 받고 교회가 안정될 때까지 교회를 섬기다 19569월 교회를 떠났다. 유난히 키가 작아 삭개오 장로로 불렸던 윤 장로는 자신의 재산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았던 삭개오처럼 여러 교회를 창립하고 세우는데 헌신했다. 만지교회(현 충일교회)도 윤형중 장로의 요청으로 19548월 정규태 목사 등이 전도집회를 열어 창립된 교회 중 하나이다.

 

비정교회의 초기 역사(1956~ 1981)

 

윤형중 장로의 선교 열정과 희생으로 세워진 비정교회는 윤 장로가 교회를 사임한 후 25(1956~ 1981) 동안 큰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정체된 가운데 있었다. 그동안 비정교회에 부임한 13명의 교역자들은 1-3년 정도 잠시 머물다 교회를 떠나기를 계속했다. 그만큼 목회환경은 열악했고 교회 성장은 오랫동안 멈추어 있었다. 195610, 윤형중 장로 후임으로 온 장선례 전도사(2)196011월 사임했고, 그 후임인 라상철 전도사(3, 1960.12 ~ 61.3)4개월 만에 사임했다. 돌연한 사임에 장중진 장로(현미교회 시무)는 후임 목회자가 부임한 8월까지 예배를 인도했다. 후임으로 부임한 4대 백 전도사(성명미상, 1961.9~62.3)6개월 만에, 19624월에 부임한 김형배 전도사(5)196411월에 사임했다. 19653월에 부임한 배경례 전도사(6, 1965. 3 ~1968. 10)는 재임 시 장중진 장로(현미교회)의 도움을 받아 열정적으로 노회 내, 각 교회를 순방하며 예배당 신축을 호소했고 이로인해 약 20여 평의 첫 예배당을 신축할 수 있었다. 어려움 중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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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예배당 이후, 배경례 전도사 시절 건축한 예배당과 여신도회원들(), 성탄절 행사 후에()


196811월에 부임한 7대 김병구 전도사는 19713월 사임했다. 교역자들의 잦은 교체로 어려움을 겪던 비정교회는 당회장 엄경술 목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중진 장로와 김종애 집사의 추천으로 송정부락에 거주하는 김재중()씨를 8대 교역자로 추천했다. 교역자로서의 자격은 부족하지만 장기 목회가 가능한 그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경술 목사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김재중 전도사는 시무 중 사적으로 목사안수를 받았고 끝내는 19741215일 임부안 집사 등 20여 명과 함께 비정교회를 이탈하여 비정제일교회를 세우고야 말았다. 교회 분립의 아픔 속에서 마침 침신대 재학 중, 방학을 맞고 있던 신학생 김홍식이 3개월 동안(1974.12 ~ 1975.2) 예배 인도를 맡았고 19753월 박재덕 전도사(9)가 어려움 속에 있던 비정교회에 부임했으나 채 수습도 하지 못한 채 그해 9월 사임했다. 차기 교역자가 부임하기 전 김순자 전도인이 잠시 5개월간 교회 목회를 맡았고 197639일 부임한 강순천 전도사(10)는 그해 112일 사임했으며 19791111일에 김대성 전도사(11)가 부임하여 1981127일까지 시무했다.

 

부흥의 기초를 놓은 시기(1981~ 1982)

 

비정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은 송건성 전도사(12)1981130일 부임하면서 마련되었다. 송 전도사가 부임한 후 비정교회를 이탈했던 비정제일교회교인들이 돌아왔고(1981510) 비동마을에서 칠산침례교회를 출석하던 교인 일부도 동네에서 가까운 비정교회로 출석하면서 교회가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에 송 전도사는 비정교회의 선교적 미래를 위해서 교회 건물을 송정마을에서 비동마을로 옮겨서 신축할 것을 계획했다. 마침 비동마을에 있는 비정리 산 1260평이 매물로 나왔고 교회는 즉시 백미 37가마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19818) 교회는 부지를 매입하면서 즉시 두 번째 예배당 건축을 시작했다. 그동안 침체를 거듭했던 교회가 교회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교회 부지를 마련하고 신축건물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큰 위기가 찾아왔다. 교회부지로 매입한 땅은 산림보호 지역이어서 건물건축이 불가능했고 산림을 훼손하면서 예배당 건축공사를 시작한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공사를 중지하고 원상 복귀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19825, 예배당 골조와 조적공사를 마치고 지붕을 올리던 중, 예배당 건축은 중단되었다. 송 전도사는 교회 성장의 기회와 함께 예배당 건축의 기초를 놓았지만 동시에 교회에 큰 과제와 어려움을 남겨둔 채 19821210일 청빙을 받고 새 임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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