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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찰] 화수교회 이야기 - 2

김진수 2021-07-29 (목) 11:07 4년전 869  

김선봉 전도사(1990.4~1995.4)19904월에 부임하여 5년간 시무했다. 199311월 담임목사 취임과 함께 박만선 장로 및 권영례, 조옥구, 이주열, 손애심, 윤석능 권사의 임직식을 거행했고, 94년에 41평의 교회를 50평으로 증축했다. 1976년 교회 설립부터 1995년까지 19년 동안은 화수교회가 꾸준한 성장과 함께 지속적인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주신 은총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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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월 거행된 김선봉 목사 취임, 박만선 장로 임직, 권사 임직식


그러나 1995~2002년까지 7년여 동안은 세 목회자들의 연이은 이동과 이로 인해 야기된 문제로 교회는 잠시 혼란해졌고 침체에 빠진 기간이었다. 19957월에 부임한 서성민 목사(1995.7~1998.9)3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시무한 후 새 임지로 떠났고, 새로 부임한 박종철 전도사(1998.10~2000.5)2년여 동안 교회에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 시켜놓고 교회를 떠났으며 뒤이어 부임한 한신 목사(200.9~2002.4)는 혼란스러운 교회를 수습하는데 힘쓰다 결국 교회의 온전한 회복을 채 바라보지 못하고 교회를 사임했다.


20024, 권오성 목사(2002.4.~현재)가 담임목사로 취임하고, 서청자, 황영숙, 성정옥 집사가 권사로 임직했다. 권오성 목사가 화수교회에 부임하면서 비로소 교회의 혼란과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고 침체되었던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권 목사는 이리저리 나누어져 있던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교회로 다시 회복시키는데 힘을 쏟았다. 무엇보다 19년 간, 흔들리지 않고 화수교회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목회자의 자리를 지켜왔다. 목회자가 묵묵히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야 말로 교회를 든든하게 하고 서로 신뢰하게 하는 근본이 아니겠는가? 2011년에는 그동안 헌신했던 조용희 장로의 원로장로 추대 및 조정옥, 김옥순, 이계춘, 오선옥, 조춘옥, 노순희 권사임직을 거행했다.


4f7df3f4cc07a890cd1cc5ad16ab4866_1627524836_85.jpg 온 교인의 헌신으로 건축한 예배당 건축공사, 외부 및 내부 모습


2011년부터는 새 예배당 건축을 위해 매년 헌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천정에서 비가 새는 오래된 구 예배당을 헐고 새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은 단순히 새 건물을 짓는 일일 뿐 아니라 그동안 침체와 혼란에 빠졌던 옛 상처를 헐어내고 온 교회의 하나 됨과 새롭고 온전한 교회회복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새 예배당 건축을 위해 온 성도들의 헌신과 사랑의 땀이 함께 모아졌다. 온 성도들이 2011년부터 매년 모아온 건축헌금과 고() 안경자 권사의 자손들이 안경자선교회를 통해 봉헌한 5천만 원의 헌금으로, 2015년 새 예배당건축이 시작되었고 이에 더하여 고 유승예 집사의 큰 자부 손애심 권사와, 2남 조용희 원로장로 가정에서 3천만 원을,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예물들이 모아졌다. 기적같이 18천만원이 넘는 건축헌금이 모아져 53평의 예배당건축비와 건축기간동안 예배실로 사용하기 위해 교육관을 리모델링한 비용까지 모자람 없이 지불할 수 있었다. 새 예배당은 20158월에 착공하여 20163월에 완공하였고, 7월에 예배당봉헌예배를 드렸다.


현재 화수교회는 담임목사인 권오성 목사가 김영옥 사모와 함께 19년 동안 교회를 섬기고 있고 시무장로인 박만선 장로는 40년 넘게 신실한 청지기로 교회를 지켜오고 있다. 조용희 원로장로는 교회의 첫 기초를 놓았던 1976년부터 교회를 섬겨온 교회역사의 산 증인이시고, 백관현 원로장로는 농촌지도소와 농업지반공사를 재직하고 은퇴하여 지금도 화훼농업현장을 지키면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조흥영 협동장로는 고() 유승예권사의 장손자로 당진에 있는 성결교회를 섬기다 현재는 화수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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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담임목사와 김영옥 사모, 당회원 박만선 장로,      조용희 원로장로, 백관현 원로장로, 조흥영 협동장로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바라며


화수교회는 지역주민들과 처음부터 따뜻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걸어왔다. 마을 주민들은 화수리 교회를 세우고 예배당을 건축할 때 자기 일처럼 나서서 협력했고 교회는 항상 교회행사 때마다 마을에 선물을 돌리고 마을 주민들은 교회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다. 무엇보다 지역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교회를 통해 신앙 양육을 받으며 자랐고 지금은 장성하여 모두가 마을을 떠났지만 어디서든지 신실한 믿음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현재 화수 1,2리 지역의 복음화 율은 40% 정도에 이른다.


2010년부터 교회는 해외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중국 교포교회의 협력교회가 되어 10여 년 동안 후원을 계속했다. 화수교회가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낯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웃을 향해 선교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현재는 대전노회 필리핀 파송선교사인 강경진 선교사 선교에 함께 동참하여 후원하는 일과 국내 선교단체인 월드비전과 파트너십을 맺어 매월 가난한 어린이, 소년소녀가장 어린이를 돕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화수교회를 사랑하며 헌신한 가문들


화수교회에는 3-4대를 이어 교회를 사랑하며 아름다운 신앙을 계승해 가고 있는 가정들이 많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갈수록 번성하고 하늘의 복을 받아 사는 신령한 믿음의 가문(Family)들이다.


자신의 집을 화수리의 첫 예배처소로 내놓았던 유승예 권사가문은 유권사의 믿음을 계승하여, 장남 조용일, 자부 손애심 권사가정은 평생 화수교회를 지켰고, 장손자 조흥영 장로는 당진에 있는 성결교회를 섬기다 현재는 화수교회의 협동장로로 섬기고 있으며, 손자 조무영은 현, 수원 부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차남 조용희 원로장로는 화수교회 창립교인으로, 1982년 장로로 임직한 후 29년 동안 온 가족과 함께 신실하게 교회를 섬겼다.


화수리 마을에서 청포교회로걸어다녔던 신신자 할머니(비인 할머니)의 가문도 뿌리 깊은 신앙가문이다. 차남인 황원식은 타 교단 목사로 평생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겼으며, 그의 두 아들 삼익, 재익 또한 모두 목사가 되어, 삼부자가 모두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조용옥과 동생 조용욱 화수교회를 세우고 섬긴 형제 장로 가문이다. 형 조용옥 장로는 청송교회에서 장로임직을 받고 화수교회를 설립하는데 중심에 섰다. 그는 교회건축을 위해 옥답 4마지기를 드렸는데, 이로 인해 법대졸업 후 제대하여 고시공부를 하던 큰 아들은 진로를 바꾸었고 서둘러 은행시험을 보았다. 아무 재산도 없는 아버지에게 신세를 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것이 그의 길을 새롭게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금융계에 투신하여 금융감독원 금융 감찰과장을 거쳤고 라이나생명 한국 초대 지사장까지 역임했다. 동생 조용욱 장로 또한 화수교회 교회창립교인으로 첫 교회를 건축할 때 그의 논을 헌납했다. 조용욱 장로의 23녀 중 둘째 아들은 감리교 목사가 되었고, 그의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다.


() 안경자 권사 가문은 세도면 일대에서 소문난 믿음의 가문이다. 아들 권오영권사는 믿음의 아내 조옥구 권사와 결혼을 하여 7남매를 두었는데 디모데처럼 할머니,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지금은 모두가 선교적 사명감을 가지고 산다. 2015년 두 번째 교회건축에 안 권사의 자손들이 드린 헌금이 큰 힘이 된 적이 있었는데, 안 권사의 며느리 조옥구 권사의 소천 후 유족들은 부의금마저 조권사의 소원이었던 목사관건축비로 드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데 유족들은 고심 끝에 더 아름다운 결정을 내렸다. ‘부의금은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남겨두고 그 자리에서 목사관 건축비 5천만 원을 새로 모아 교회에 바친 것이다. 이 가문의 믿음이 참 눈부시게 아름답다. () 조권사의 둘째사위 강종수장로(세도교회 강경수 장로 동생) 또한 시무하는 교회를 섬길 뿐 아니라 작고 어려운 교회를 찾아다니며 경제적으로 돕고 협력하는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남남순 집사 가문도 있다. 화수교회 시무장로인 박만선 장로의 모친이다. 본래 무당이었던 남 집사는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화수교회의 교인이 되었고 새 사람으로 변화된 뒤 주변에서 그를 추종하던 이들을 개종시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남 집사의 둘째아들인 박만선 장로는 1993년 화수교회의 장로로 임직 받은 후 지금까지 신실하게 교회와 노회를 섬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 장로의 큰 아들은 아버지 박 장로와 함께 하우스농사를 하며 교회를 지키고 있고, 작은 아들은 교회 가까운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교회를 섬긴다젊은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는 시대에 애써 고향교회를 지키며 헌신하는 삼부자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남남순 집사의 셋째 아들 박윤선 장로는 현재 서대전 새하늘 감리교회를 신실하게 섬기고 있다.


봄이 오면 봄꽃이 만발하는 화중개(花中開) 마을에 사시사철 천지를 덮는 새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벌 나비 날아와 꿀을 얻는 꽃이 아니라 지치고 갈한 이들이 와서 생명의 물, 생명의 양식을 얻는 하늘 꽃이 지상의 화수리 마을에 만개한 것이다. 70여 년 전, 하나님이 보내신 한 과객이 화수리 사람 몇을 불러 전했던 신령한 소리를 가슴에 담았던 사람들이 화수리 마을을 거룩한 마을로 만드는 첫 꽃씨가 된 것이다. 누가 이렇게 조그만 화수리가 생명의 꽃으로 가득한 화중(花中)마을이 될 줄을 알았겠는가?


** 화수리에 처음 복음을 전한 성낙소 목사는 본래 구세군 사관출신으로 갈라져있는 교파교회의 폐해를 가슴아파하며 192711일 충남 부여군 세도면 화수리에 초교파적인 기독지교회(基督之敎會/ 그리스도교회)”를 개척하여 시무했다. 그래서 한국 그리스도의교회는 기독지교회(화수교회)”를 한국의 첫 자생적 그리스도의교회로 부른다. 그는 19305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 그리스도의교회 일본선교사인 커닝함(William D. Cunningham)을 만났고 마침 그리스도교회의 조선선교를 고심하고 있던 커닝함으로부터 19319월 조선 전 지역 포교책임자로 임명받고 귀국하여 전국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데 앞장섰다.(출처:https://sangdochurch.tistory.com/89 https://cafe.daum.net/nwonju/pZEY/13?q=%ED%99%94%EC%88%98%EA%B5%90%ED%9A%8C&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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