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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찰] 홍연교회 이야기 - 1

김진수 2026-05-30 (토) 16:50 10일전 53  

선교사들과 어울렁1)

홍연 마을과 더울렁 함께 세워간

부여 홍연교회

 


대전노회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1904년 설립) 중 하나인 홍연 교회는, 1904, 서천에서 부여로 향하던 낯선 서양인 일행이 홍연리에 이르러 해가 저물자, 그곳 한 사랑채에 하룻밤을 머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깊은 산골에 자리한 홍연리 주민들은 갑자기 찾아온 이 낯선 서양 선교사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그들이 말하는 서툰 조선말과 알아듣기 힘든 복음의 진리를 순전한 마음으로 경청하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 하룻밤의 특별한 만남은 오랫동안 부여, 홍산 지역의 유교적 전통과 문화에 젖어 있었던 마을 사람들의 심령에 조용한 영적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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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교회가 세워진 홍연마을




() 남장로교 선교사들과 함께 세워간 홍연교회(1904~)

 

홍연은 나지막한 산에 겹겹이 둘러싸인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음에도, 여러 선교사가 찾아오고 오랫동안 머물며 매우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은 교회였다. 홍연(紅蓮)! ‘붉은 연꽃이란 이름의, 이 작은 마을은 마치 붉은색 연꽃 같은 외모와 심성을 지녔다. 주변에 둘러선 나지막한 산들은 부드러운 연꽃잎을 닮아 있고, 연분홍 색깔은 오랫동안 선하고 순진하게 살아온 홍연리 주민들의 심성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홍연에서 머무르며 복음을 전했던 서양 선교사들은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홍연 마을을 찾아왔고 그곳에 뿌려진 복음의 씨는 임백도, 임백상, 임학준, 윤상권, 윤상택 조모(祖母), 임달호 조모(祖母) 6인이 모여 드린 예배를 통해 싹이 돋아나, 임씨 집성촌이었던 홍연리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1. ‘어위렴부위렴선교사(1904~1918)

 

1904년 홍연에 복음의 첫 씨를 뿌린 것은, () 남장로교 군산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로, 당시 남장로교 선교부는 군산을 중심으로 금강을 잇는 '선교 벨트'를 형성하여 군산-서천-부여 지역을 오가며 교회들을 세웠고, 그 중 부여, 홍산, 홍연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한 것은, 전주 선교의 개척자 어위렴(William B. Harrison, 1866~1928) 선교사와 군산을 중심으로 선교했던 부위렴(富威廉, William F. Bull, 1899~1940) 선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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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위렴 선교사                             부위렴 선교사  




전주에 호남 최초의 전주서문교회와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세운 어위렴 선교사는 금강을 따라 군산-서천-부여를 오가며 1904년부터 1년 동안, 홍연교회를 집중적으로 살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05년부터 어위렴 선교사가 서천 한산 지역에 선교사역을 새롭게 집중하면서 부여, 홍연, 홍양 지역은 부위렴 선교사가 이를 계승하여 사역하기 시작했다.

 

부위렴 선교사는 금강을 건너 말을 타고 험한 산길을 지나며 홍연 지역 구석구석을 방문하여 성경을 배포했고, 사랑채에 멍석을 깔고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홍연교회에서 '사경회(성경 공부 모임)'를 열면, 인근 서천이나 부여 다른 마을에서도 보따리를 싸 들고 찾아와 교회 마당에서 잠을 자며 성경을 배웠다고 한다. 부위렴 선교사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부여 지역 교인들을 만나기 위해 나룻배에 몸을 싣고 올 때면, 마을 사람들은 "서양 선비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온다"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2. 홍연 교회와 그 초기시대(1908~1918)

 

부위렴 선교사가 부여 홍연 지역선교에 집중하면서, 홍연 교회는 점점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1908, 그동안 성도들의 사랑채나 가정을 돌아가면서 드렸던 예배를, 임백상 장로(당시 성도)의 자택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성도들이 함께 하는 모임에 활력이 붙기 시작했다.

 

. ‘ㄱ자모양의 첫 예배당 건축(1915~)

 

교회는 점점 힘을 얻어 지역을 전도하는데 힘을 쏟았고, 1915, 온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임씨 중종 땅에 손수 흙벽돌을 찍어 벽을 쌓고, 초가지붕을 얹어 남, 여의 좌석을 구별하기 위한 ㄱ자모양의 초가 4칸 교회당을 건축했다. 창립 후 11년 만에 성도들이 자력으로 힘을 모아 10여 평 예배당을 건축한 것은, 홍연교회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전도 부흥에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교회는 점점 순박한 마을 사람들로 채워졌고, 척박했던 일제 치하의 억압과 가난 속에서도 예수 보혈의 은총은 홍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 임학준 영수

 

홍연교회가 첫 교회당을 건축할 무렵, 부위렴 선교사의 뒤를 이어 남장로교 매요한 선교사가 부여 지방의 여러 교회들을 순방하며 치리하고 있었고, 1923년 제12회 전북노회 노회록에 따르면, 당시 홍연교회는 임학준 영수가 예배 인도를 맡고 있었다. 아마도 첫 교회당을 건축한 1915년 이후로부터, 홍연교회의 성장기에 영수로 시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3. 3.1 운동과 매요한 선교사(1919~1924), 여성들을 깨운 두애란 선교사(1925~)

 

'순회 전도'의 전문가로 불렸던 매요한 선교사(梅堯翰, John J. McCully) 고을마다 도보로 방문하여 억압받는 한국인들에게 복음과 함께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두애란 선교사(杜愛蘭, Ellen Devore) 또한, 1919년부터 1930년까지 홍연교회를 오가며 교회와 홍연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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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요한 선교사                               임학준 영수 

          


. 3.1운동과 매요한 선교사

 

홍연교회 제3대 당회장으로 섬겼던 매요한 선교사는 충남 서천, 부여 지역의 '순회 전도'의 전문가 로 불릴 만큼 헌신적인 인물이었는데, 마을마다 도보로 방문하는 순회 전도를 통해 억압받는 한국인들에게 복음과 함께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1919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매요한 선교사는 홍연교회를 통해 만세 운동을 부여 지역으로 확산시키는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여독립운동사에 따르면 당시 부여 지역은 횃불 만세운동을 벌인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일경과의 직접적인 대치를 피하고, 일제가 만세 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광범위한 지역의 모든 국민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만세 운동이었다. 실제로 홍연교회의 임학준 영수는 등사한 독립선언문을 소지하고 부여지역으로 은밀히 전달했을 뿐 아니라, 교회를 대표한 봉화 요원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매요한 선교사는 갓 세워진 교회들이 조직을 갖추고 스스로 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홍연교회 초기에 당회 구성교회 지도자를 세우는 일을 도왔는데, 전술(前述)한 대로 1923년 이전부터 임학준 영수를 세워 교회를 섬기게 했고, 1925년에는 임백상, 임학준 씨를 초대 장로로 임직하여 당회를 조직 하고, 1931년에는 임용호, 윤상학 씨를 2대 장로로 임직하는 데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 두애란 선교사

 

1925년부터 홍연리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마을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과 특히 여성들을 돌보고 깨우치는 일에 헌신했던 두애란(Ellen Devore) 여선교사의 헌신과 사랑으로 크게 활성화되었다. 뚜 부인으로 불렸던 푸른 눈의 두애란 선교사는 자전거 뒷좌석에 밀가루나 의약품을 싣고 와서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가난한 이들을 돕고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특히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받던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위로를 건네며, 홍연교회를 단순히 '예배보는 곳'이 아닌 '마을의 사랑방'이자 '희망의 처소'로 만들었다고 한다.

 

 

홍연교회의 초기 부흥 시대와 여신도들의 헌신(1928~1945)

 

홍연교회에는 홍연교회만의 매우 특별한 정체성과 함께 교회 부흥의 모티브가 존재한다. 홍연교회는 충남(대전)노회에서 가장 먼저 설립(1904)된 교회 중 하나였고, 미국 남 장로교회에서 파송한 네 분의 선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교회였지만, 해방 이후 첫 담임목사로 부임한 임달호 목사가 사역하기까지 무려 44년 동안(1904~1948) 담임 교역자 없이 간헐적으로 방문하는 선교사들의 도움과, 임학준, 임백상 장로를 중심으로 한 평신도들의 헌신으로 교회를 성장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홍연교회 여신도들의 교회 사랑의 열정과 헌신이 깊이 뿌리박혀있다.

 

이와 같은 홍연교회만의 정체성과 교회 부흥의 모티브는 1925년부터 홍연리 지역을 오가며 아이들과 여성들을 사랑하며 홍연교회 여신도들을 일깨웠던 두애란 여선교사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두애란 선교사가 홍연교회를 섬겼던 시기에 홍연교회 여신도들의 헌신과 섬김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들이 전북노회 회의록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리고 당시 두애란 선교사와의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임은주() 원로장로의 구술 또한 그 시대의 상황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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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홍연교회의 제직들과 여신도회원들



1) "어울렁, 더울렁"은 어울리고 더불어"란 제주 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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