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이야기 – 7
민들레 홀씨 하나로
교회를 세우고 마을을 변화시켜온
내곡교회 이야기
민들레는 그 뿌리가 깊어 짓밟혀도 일어서고 햇빛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잘 자란다. 봄에 샛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꽃이 진 자리에는 수많은 홀씨가 동그란 공처럼 맺히는데 그 하나하나에 흰색 깃털이 있어 바람을 따라 멀리 날아가 뿌리를 내려 번식한다. 한국 교회는 민들레를 닮았다. 일제의 온갖 풍상, 한국전쟁의 지난한 고통을 이겨내고 뿌리를 내렸으며 삼천리 방방곡곡 마을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내곡리 마을로 날아 온 민들레 씨 이야기
1955년 10월 9일 내곡리 마을에 큰 천막 하나가 세워졌다. 지석교회 송정섭 집사가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려고 백미 2가마를 주고 구입한 천막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청포교회 송안성 집사가 합세하여 3일간 15명을 전도했다.(내곡교회 1955년 당회록) 이름도 빛도 없이 교회를 섬기던 평신도들이 성령에 붙들려 민들레 홀씨처럼 내곡리에 날아와 복음의 씨를 뿌렸고 내곡 교회 66년 역사의 첫 문을 열었다.

1955년 10월 네곡리에 날아온 복음의 씨앗과 천막교회
1956년 새해 벽두부터 내곡 교회는 천막교회에서 이구승 목사를 강사로 5일간 부흥회를 열었다. 부흥회는 뜨거웠고 천막교회에 몰려온 사람들은 가난과 어둠에서 새 소망을 갈망하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원의 주로 영접했다. 교회가 성장해 가던 그해 3월 충남노회는 내곡 교회의 설립을 허락했고(당회장 이구승 목사, 예배인도 송정섭 집사) 1956년 4월 8일 부활절, 당회장 이구승 목사는 내곡 교회 교인 8명(성백화, 우동균, 최정희, 유정순, 이동직, 황영애, 박양순, 박채순)에게 첫 세례를 베풀었다. 내곡리 지역에 하나님이 내리신 첫 결신의 열매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순조롭게 성장했지만 추위도, 더위도, 바람도 막을 수 없는 천막교회라 어려움이 많았다. 예배당 건축을 위해 이번에도 천막교회를 시작한 송정섭 집사가 나섰다. 목수가 본업이었던 송 집사는 노회와 지방회(시찰회)의 도움을 받아 1956년 4월, 내곡리 내동 언덕위에 자기 손으로 첫 번째 교회건축을 시작했다(적립금 2만, 노회선교비 5만. 시찰회 5만, 송정섭 15만, 총 27만환). 교회를 개척한 후 막 6개월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20일 추수감사절에 맞추어 입당예배를 드렸다. 불과 1년여 만에 한 평신도의 복음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통해 내곡 교회가 창립, 설립, 예배당 건축까지, 뜨겁고 빠르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내곡 천막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건축한 송정섭 집사는 목회자가 부임할 때까지 예배를 인도하고 교회를 섬기며 헌신했다. 송 집사는 후에 장로가 되었고 무정교회 전도인으로 시무하기도 했다. 그의 아들 송기성 목사는 현재, 성남 신도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천막교회가 내곡리에 뿌리내린 이야기
내곡 교회를 섬긴 첫 교역자는 1958년 12월 10일 부임한 김성규 전도인(홍산교회 출신)이다. 김성규 전도인이 부임하기 전까지 송정섭 집사가 예배를 인도했고, 한국신학대학에 재학 중이던 박종우 전도사(후에 대전 대성중학교 교장으로 은퇴)가 1957년 ~ 58년, 겨울 방학 중에 잠시 예배를 인도했으며 임달호 목사도 1958년 4월에서 12월까지 예배를 인도했다. 김성규 전도인은 1965년 1월까지 6년 동안 이제 막 일어나 발걸음을 떼고 있는 내곡 교회를 성심으로 섬겼다. 내곡 교회 교인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목회자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 2월에 부임한 이재욱 전도사이다. 열심을 다해 교회를 섬겼고 교인들을 사랑하다 군목으로 입대하기 위해 1968년 8월 교회를 떠났다. 그 후임으로 최정홍 전도사(웅천교회 원로목사)가 1968년 8월 부임하여 잠시 교회를 섬기다 69년 1월 갑자기 사임하면서 1970년 7월, 내곡 교회 후임 목회자가 정해지기까지 홍산교회 이현정 전도사가 먼 길을 오가면서 예배를 인도했다.
1970년 7월 12일에 부임한 구락서 전도사는 8년간 내곡 교회에 시무하면서 교회를 안정시키고 성장시켰다. 그의 젊음을 다해 교회를 섬겼고 성실하게 목회했다. 구 전도사가 목회하는 동안 내곡 교회의 초대장로를 임직했다. 1974년 10월 30일에 임직한 박길배 장로는 1982년 5월 지병으로 소천하기까지 성도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고 신실하게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섬겼다. 특히 두 번째 예배당을 신축하면서(1979년) 온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건축에 참여하도록 구심점이 되어주었다. 구락서 전도사는 1978년 5월 지석교회 전도사로 청빙을 받아 내곡 교회를 떠났다.
내곡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야기
교회의 부흥은 항상 인간의 전략이나 목회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때와 시기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내곡 교회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과 부흥을 이룬 시기는 김봉환 목사와 양형석 목사가 시무했던 시기였다.
1978년 5월에 부임한 김봉환 전도사는 내곡교회의 성장시대에 쓰임을 받았다. 김 전도사가 부임한 다음해 1월, 교회는 규모를 확장하여 새 예배당(2차)을 신축하려고 부지를 새로 매입했다.(내곡리 323, 316평) 그러나 그 위치가 교인들이 많이 사는 내동마을과 기존의 예배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고 높은 언덕이어서 그 적합성에 의문을 품은 교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늘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아름답다. 교회를 건축할 때, 온 교인이 높은 언덕을 깎아내리는 토목공사에 동원되고 외딴 곳에 세워지는 교회 위치 때문에 염려가 많았으나 막상 건축을 마치고 보니 새 예배당 부지는 높은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주변 사면에서 눈에 잘 띄고 신축 예배당은 교인들이 사는 세 개의 부락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오히려 모든 부락에서 접근하기 좋은 위치가 되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롬8:28). 새 예배당 건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첫 예배당이 교회를 개척한 송정섭 집사 주도로 이루어졌다면 두 번째 예배당 건축은 온 교인들이 동참하여 이루어졌다. 김 전도사는 1981년 8월 목사안수를 받고 그해 10월 예배당헌당과 담임목사 취임을 하면서 농촌교회 목회 뿐 아니라 농촌지역을 살리고 농민을 계몽하는 “기독교 농민운동(기농)”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농촌사랑과 농민계몽에 대한 열정은 내곡교회뿐 아니라 내곡리, 신홍리 지역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1993년 4월 교육관을 신축하고 그해 11월 25일 황의국, 정태수 장로를 임직하면서 내곡 교회가 농촌지역의 영농발전과 소득증대에 영향을 주었고 지역사회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다.
1979년 2월에 완공한 2차 예배당(좌)과 2003년 6월에 완공 입당한 3차 예배당
20년을 재직한 김봉환 목사의 후임으로 1998년 12월 2일 양형석 목사가 부임했다. 양 목사는 조용하고 성실하게 교회의 본질인 예배와 말씀과 기도에 집중했다. 그는 말씀중심의 목회자였다.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했고 장차 이루어질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 그는 기도생활을 강조하면서 늘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과 응답을 강조했다. 김봉환 목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사명에 목회적 역량을 집중했다면 양 목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도의 영적 삶과 그 내면의 변화에 목회의 초점을 두었고 내곡 교회는 교회성장과 영적 부흥을 함께 경험하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져 갔다. 2003년에 시작한 내곡교회의 3차 예배당 신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다. 2001년 부활절에 온 교인이 예배당 건축헌금을 작정했고, 교회 앞에 있는 땅을 매입하여 부지를 확장했는데 그 부지에 큰 도로가 지나가게 되어 교회가 교통이 좋은 도로변에 위치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도로에 포함된 토지를 좋은 가격에 보상받게 되어 예배당 건축에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 봉헌한 건축헌금(토지보상 8천만, 건축헌금 8천만, 교회예산 2천만, 총 1억 8천만 원)과 성도들이 자원한 노력봉사로 예배당은 은혜 중에 아름답게 건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