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줄기가 치솟을 때
나무는 줄기가 하늘로 치솟으며 자란다. 가지는 항상 줄기가 먼저 치솟아 올라간 만큼 균형을 맞추며 옆으로 뻗어간다. 줄기가 앞장서서 하늘로 뻗어나가야 가지는 줄기를 따라 그 폭을 확장시킨다. 송학교회에는 그 믿음과 삶이 하늘로 높이 치솟은 영적 용장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앞서서 믿음의 길을 걷고 우러러 볼만큼 뜨거운 헌신의 삶을 사신 분들이 있다. 그 중의 한 분이 이준희 원로장로시다. 1986 년 12월 임직을 받은 이준희 원로장로는 송학교회 온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면서 항상 그 선두에서 섬김의 본을 보였다. 성도들이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할까를 생각할 때 이미 저만큼 앞서서 걸어갔다. 그를 가까이에서 만나 본 사람들은 그를 “몽땅 장로”란 애칭으로 부른다. 그는 본래 학교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고 가진 재산도 변변히 소유한 것이 없으며 소위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다. 그런데도 믿음의 도량이 얼마나 큰지 주님을 위한 일에는 항상 자신의 전부를 들고 나온다. 교회건축을 위해 자신의 전 토지를 바치고, 교회 일을 위해서는 자신이 노후를 위해 저축한 돈뿐 아니라 그 품에 잠시 머무는 모두를 내려놓았다. 항상 “몽땅”이다. 매일 날품을 팔아 사신 장로님은 새벽예배를 마치면 곧바로 일하러 가야 해서 새벽예배 전 30여분 전에 미리 교회에 와서 마당청소, 연탄재, 쓰레기 청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동네에 초상이 나면 교인이나 불신의 가정을 막론하고 초상을 치르는 동안 본인의 일을 중단하고 그 집을 위해 온전히 섬기셨다고 한다. 심부름, 청소를 비롯하여 쓰레기수거 등, 모든 일을 마치 그 집의 일군처럼 봉사한 것이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이 못 배우고 가난하고 날품을 팔아 사는 장로님을 무시하고 비웃었지만 그의 진정어린 봉사와 섬김에 점차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고 그가 섬기고 있는 교회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이준희 장로와 함께 장로 임직을 받은 김여택 원로장로는 24년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마치 성막의 각종기구를 만들었던 브살렐, 오홀리압처럼(출31:2,6)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 안에 섬세한 기술과 재능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도맡아 만들고 고치고 손질하는 일에 헌신했다. 1990년 5월에 임직한 류인환 원로장로는 소년시절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교회의 실무에 밝아, 주일학교, 소년회 교사, 제직회 서기와 회계 등을 오래 역임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마을의 대표로 오랫동안 봉사하며 교회와 마을 간의 가교역할을 감당했다. 1992년 5월 임직한 나병찬 원로장로는 청년시절부터 주변의 신망을 얻을 만큼 신실한 진주같은 성품의 소유자다. 항상 주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모든 일에 앞장섰으며 17년 동안 새벽기도 종지기로 섬겼다. 그리고 강희섭, 추수영 원로장로는 2011년 5월 늦은 나이에 장로로 부름을 받았지만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는 말씀처럼 재임기간동안 성실하게 충성하여 온 성도의 믿음의 본이 되었다.
이것이 송학교회가 마을 규모나 마을 주민들의 생활수준에 비해 비교적 앞선 부흥을 이룬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원로장로님들의 믿음과 생활이 마치 하늘로 치솟은 줄기처럼 높고 고상하다. 그래서 성도들은 앞에서 이끄는 장로님과 함께 교회와 마을을 섬기는 믿음의 가지를 뻗어나갔다.
이준희, 김여택 원로장로
기왕에 첨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본래 장공(長空) 김재준 박사가 작사한 찬송 582장 2절은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가 치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새 찬송가가 나올 때마다 가사를 손질하다 “큰 흠이 될 만한 실수”가 생겼다. 하늘로 "줄기가 치솟을 때"를 하늘로 "줄기가지 솟을 때"로 바꾼 것이다. "줄기가 치솟는 것"과 "줄기가지 솟는 것"은 문장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의미를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꾼 것이다. 세상을 바꿀 혁명적인 내용을 상식적인 것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창조적인 가사를 두루뭉수리하게 바꿨다! 줄기와 가지가 함께 나가면 변혁과 창조는 없다. 줄기가 앞서서 먼저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라야 한다. 그래야 가지가 힘써 치솟은 줄기를 따라 가지를 뻗는다. 기장(機長)이 있어야 비행기가 뜬다.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송학교회는 늘 지역사회를 조용히 섬기고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이다.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 교회를 지키며 지역을 섬기는 일에 앞장서 왔다. 교회는 항상 마을의 대소사에 함께하고 동네의 애경사에 적극 참여한다. 오랫동안 지역의 노약자들을 위한 목욕봉사활동, 혹한기 독거노인 주택에 비닐 방풍막을 설치해주는 일, 마을주민들과 함께 하는 춘계 관광여행, 틈이 나는 대로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식사를 대접하는 일을 한다. 교회의 절기행사는 온 마을 주민을 위한 단합축제로 확대했다. 추수감사절행사는 지역주민을 위한 초청 잔치로, 부활절은 교회가 정성으로 마련한 선물을 온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는 행사로 치른다. 지역농민을 대상으로 한 영농교육을 실시하기도 하고 매년 지역 내 5개 부락이 함께 모이는 대동총회에는 교회가 앞장서서 참여하고 대회운영을 위한 지원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지역 내에 몇 안 되는 청소년들을 육성하기 위한 일에 관심을 갖고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교회에서 우수영화를 선정해 상영해 주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선교사역에도 힘을 모아 매년 미 자립교회 5개 교회를 선정하고 돕고 있으며 직접 방문하거나 택배로 사랑이 깃든 김장김치와 햅쌀을 제공하기도 한다.

좌로부터 1) 선교김장김치, 2) 추수감사절 마을 단합대회, 3) 주민초청 잔치
무엇보다 송학교회는 꾸준히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한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를 쉬지 않는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송학교회에서 배출한 목회자들이 여럿이다. 목회자는 어릴 때부터 꿈을 꾸며 준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목회자와 그 영향력에 대한 동경, 신실한 믿음생활을 한 가족이나 교인들의 영향, 교회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신뢰, 복음에 대한 소명감 등이 어릴 때부터 목회에 꿈을 꾸며 동경하게 하는 영적 토양이다. 그만큼 송학교회가 끼친 교회 내외의 영향력이 크고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타 교파 목사가 된 이도웅 목사, 이재풍 목사, 김대덕 목사, 그리고 장로로 시무하다 본 교단 목사가 된 이태세 목사(충일교회) 등이 있고, 한신대를 졸업한 임선아 전도사, 장신대원을 나와 통합측 전도사로 섬기고 있는 김지숙 전도사도 송학교회 출신 목회자들이다.
김승현 목사 부부
송학교회 예배당 강단 앞에 나란히 서있는 김승현 목사내외는 선한 목자의 미소로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 있다. 예배당을 나와 언덕위에 세워진 교회 목사관 마당에 서면 그 아래로 넓게 자리 잡은 논과 들녘이 펼쳐져있고 저 멀리 남면 면사무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래 전,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지역에 송학교회를 통해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오신 하나님께서 이제 또 새 일꾼들을 세워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