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기적처럼 예배당 건축 부지까지 마련해 주셨다. 김 전도사와 온 성도들은 주암리 김영업 씨의 채전(菜田)에 교회당을 지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김영업 씨를 만날 때마다 “저 밭에 교회를 건축하면 참 좋겠다”는 말을 수시로 건넸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며 믿음으로 하는 말은 곧 씨가 된다. 어느 날, 불신자였던 김영업 씨가 술을 마시고 기분 좋은 얼굴로 김 전도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도사님 제 땅에 교회를 건축하세요!” 그리고 1986년 10월 17일 그 채전(菜田)을 교회당 건축 부지로 헌납했다. 저암교회 현재의 예배당은 이렇게 불신자 남편의 마음까지 감동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주암리 나지막한 언덕 위, 신선한 채소를 생산했던 채전 위에 세워졌다. 김영업 씨는 그 후에 저암교회의 집사로 주님을 섬겼다.
김영업 집사의 채전에 세워진 교회당 초대교역자 김영숙 전도사 박오희 초대장로
특별기도회 기간동안 375,000원의 헌금이 교회당건축헌금으로 드려졌고, 1986년 10월 5일 미국에 거주하는 김 전도사의 친척 강순영 권사가 저암교회를 방문하여 교회 건축 소식을 듣고 헌금 120만 원을 드렸으며 귀국 후에는 전화로 3백만 원의 추가 헌금을 약속하기도 했다. 김 전도사의 부흥 집회에 은혜를 받은 서울의 이규숙 권사는 매월 이 전도사의 생활비로 8만 원을 보냈는데, 김 전도사는 3년간, 이 헌금을 모아 3백만 원의 건축헌금을 드리기도 했다. 이렇게 모아진 일천여 만 원의 건축헌금으로 86년 10월 17일 교회당을 착공했고, 건축공사를 백광옥 씨에게 맡겨, 12월 4일에 50여 평의 예배당을 은혜중에 완공했다. 그리고 기쁨과 감격 으로 내산교회 분립 및 입당 예배를 드린 이날, 시찰장 정창수 목사의 사회, 김성수 목사의 기도, 임헌재 목사의 설교로 올려드렸다.
다음 세대와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룬 교회(1987년-1996년)
저암교회는 교회를 신축한 후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했다. 1987-88년, 대전노회록에 따르면 “김영숙 전도사 인도로 교회 건축 후 부흥 중”이라는 시찰 보고와, 저암교회 집회 보고 중 “재적 80명, 주일 낮 60명, 수요 밤 30명”이라는 보고가 나온다. 1987 ~ 97년, 10년 동안 농촌에서 여성 목회자가 목회하는 저암교회가 지속적인 교회 성장을 이룬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저암교회의 1986년 ~ 96년까지 수세자(受洗者) 통계를 보면 86년 14명, 87년 9명, 88년 3명, 89년 11명, 90-91년 0명, 92년 2명, 93-94년 0명, 95년 2명, 96년 6명 등 10년간 총 47명이 세례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 저암교회는 매년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부흥회와, 다음 세대 양육을 위한 어린이 성경학교와 중고등부 수련회를 개최했다.
목사관 건축과 은퇴
은퇴를 2년여 앞두고 김 전도사는 그의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었던 목사관 신축을 시작했다. 1997년 1월 27일, 교회당 곁에 있는 땅 156평을 130만 원에 매입했고 1999년 3월 23일 터를 닦고, 4월 20일 목사관 26평 공사를 김규호 장로(반산성결교회)에게 맡겨 건축을 진행했고 1999년 6월 26일 완공했다. 저암교회는 그동안 마련한 예치금 1,800만 원에, 모자란 금액은 제직들의 헌금으로 충당하여, 공사비 3천, 세금 240만 원의 공사비를 지불했다.
1999년 11월 30일 저암교회는 방기준 목사(내산교회) 인도로 신축목사관 입주식과 함께 저동교회 3년, 저암교회 초대 교역자로 13년 동안 시무한 김영숙 전도사의 은퇴 예배를 드렸다. 김 전도사는 그의 동역자 임동희 전도사와 함께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 깊은 농촌에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당을 건축하며, 자기희생적 헌신, 불굴의 믿음으로 농촌교회를 성장시켜 온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신실한 종들이었다. 김 전도사와 임동희 전도사는 16년간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처음에 저동교회를 세웠던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
저암교회의 사사시대(1999년 – 2015년)
1999년 김영숙 전도사가 은퇴한 후, 저암교회는 16년간 다섯 분의 교역자가 2~3년씩 시무한 후 사임하기를 계속하는 “사사시대”로 접어든다.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 이후,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사사시대를 지나며 그 세력이 약해져 갔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죽었고, 평범한 농사꾼, 장애인, 서자, 가정주부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성령으로 감동하여 잠시 사사로 시무했던 시대였다. 사사들의 재임 기간은 짧았고, 백성들은 이방 민족들의 잦은 침략으로 늘 위기 가운데 있었다.
1999년 12월 15일 저암교회 제2대 목회자로 부임한 오정석 전도사는 부임 2년 후인 2002년 3월 대전노회 정기회에서 저암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목사 안수를 받았고, 목사 임직 후, 얼마 안 되어 새 교회의 청빙을 받아 2년 만에 교회를 떠났다.
충남노회에서 시무하던 이재준 목사는 늦은 나이에 저암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 목사는 2003년 4월 22일, 교회가 창립된 후 첫 번째 맞는 김선수, 박명용 장로임직식과 한정현, 김남용, 김정호, 김영훈, 차인희 권사의 임직 행사를 은혜중에 잘 마칠 수 있도록 힘썼고 2년을 시무한 후, 2005년 3월 28일 자원은퇴를 했다.

김영숙 전도사의 은퇴를 앞두고 건축한 목사관 제2대 김선수 장로 제2대 박명용 장로
2005년 8월 9일, 대전 한밭교회 부목사였던 박영 목사가 제4대 담임목사로 취임했고 2년 후 다시 대전에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새 임지로 떠났다.
2007년 11월 25일 정년이 가까운 나이에 취임한 5대 정연진 목사는 2007년 11월 25일 조점례, 이순자, 유숙자, 김영개, 김권수 등 5인의 권사임직식을 거행했고, 2010년 사임과 함께 은퇴했다.
2010년 11월 7일 부임한 제6대 고요한 전도사는 2011년 준목, 2012년 담임목사가 되어 2015년 11월 8일까지 5년간 성실하게 저암교회를 섬긴 후 사임했다. 현재는 대구노회의 건실한 교회 중 하나인 서광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저암교회의 16년간의 “사사시대”는 농촌의 작은 교회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목회적 비전을 갖고 장기 목회를 할 형편이 아니어서 젊은 목회자들이 잠시 거쳐 가거나, 고령의 목회자들이 마지막으로 교회를 섬길 기회로 여기고 부임하기 때문이다. 사실, 저암교회 첫 16년간은 여성 목회자인 김영숙, 임동희 전도사의 전적인 헌신과 성도들에 대한 모성적 사랑을 쏟으며 교회가 별 어려움 없이 성장해 왔지만, 성도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과 목회자에 대한 사랑은 비교적 미온적이고 수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16년의 사사시대”는 저암교회가 앞으로 농촌교회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숙한 교회로 변화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훈련과 성숙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