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1980년 11월 30일, 그동안 교회의 모든 분야의 일꾼으로, 헌신했던 이봉영 집사를 6대 장로로, 1983년 12월 9일에는 청소년 시절부터 교회를 성실하게 섬겼던 백복현 집사를 7대 시무장로로 임직했다. 그는 장로 임직 후, 3차 교회당 건축과 목사관 건축위원장으로, 대외적으로는 노회와 총회를 위해 중책을 맡아 오랫동안 충직하게 헌신했다. 또한 이 시기에 김승현 전도사가 부 교역자로 부임하여(1984.12.9.) 3년여 동안 성실하게 교회를 섬겼고, 이후 대전노회에서 신안, 송학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기도 했다. 김승재 목사는 1986년 12월 31일까지 13년간 부흥과 안정을 위해 크게 헌신한 후 홍산교회의 사역을 끝으로 은퇴했다.
홍산교회의 중흥기(中興期)를 이끈 김성수 목사(1987년 ~ 2019년)
안기중, 김갑배, 김승재 목사(1961년~1987년)를 통해 교회가 안정적인 성장의 터전을 마련했다면 김성수 목사는 홍산교회를 내적, 외적으로 크게 부흥시킨 목회자였다.
1987년 9월 24일 김 목사는 홍산교회 제6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홍산교회에 시급한 것은 기도를 통한 “신앙의 불”을 되살리는 것임을 확신하며 직접 기도하는 일에 앞장섰고, 기도의 필요성을 설교하기 시작했다. 춘, 추계 대 심방 후에는 성도들의 기도 제목을 들고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며 기도했다. 3년이 지나면서 예배와 모임이 활성화되고, 교인들이 앞서서 헌신하기 시작했다.
1. 하나님의 은혜로 이룬 3차 교회당 신축(1989년 ~ 1994년)
홍산교회가 1974년에 건축한 두 번째 교회당은 예배실과 재래식 화장실이 전부였다. 김 목사는 기도하며 20년 후를 내다보며, 다음 세대 교육과 선교적 비전을 담은 예배당 건축을 구상했지만, 당시의 교회 형편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989년 초, 뜻하지 않게 한 성도가 5백만 원의 건축헌금을 드렸고, 그 헌금이 교회 건축을 시작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교회는 1989년 2월 19일 임시 제직회를 열어 건축위원회를 조직했고, 교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놓고 3년을 기다리며 총의를 모았다. 먼저 구 교회당 건물을 헐고 신축하기로 하고, 다음은 지하 1층, 지상 1, 2, 3층 규모로 건축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자 여러 난제가 하나씩 해결되어 갔고 걱정했던 건축헌금도 온 성도가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1994년 3월 31일 총공사비 6억 7천여만 원, 연건평 323평의 홍산교회 새 교회당이 완공되었다.

2. 충직한 일꾼들을 세워 홍산교회의 성장기를 이끈 목회(1990년 ~ 2007년)
제3차 교회당 건축을 전후로 홍산교회는 건실하게 성장했고, 충직한 일꾼들을 세워 교회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교회당 건축을 앞둔 1990년 5월 5일, 교회는 박성중 씨를 선친 박건화 장로(4대)의 뒤를 이어 8대 장로로 임직하고, 최춘자 씨 등 17인을 권사로 취임하는 예식과 함께 임항재 장로의 원로장로 추대식을 거행했다. 박성중 장로는 모태신앙으로 일찍부터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재정부장 등으로 섬겼고 교회버스를 운행하며 교인들의 예배 참석과 교회 행사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1995년 12월 5일 교회당 헌당식과 함께 이우창, 최병호, 임장균 3인을 9대 장로로, 이승태 장로는 원로장로로, 왕창국 등 9인을 권사로, 김옥희 등 5인을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이우창 장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에 항상 뜨거운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 섬겨오고 있고, 교회가 맡긴 일은 변함없이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최병호 장로는 온 가족이 성가대원으로 섬기는 가정이다. 임장균 장로는 오랫동안 찬양의 은사로 성가대원과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고, 타고난 재능으로 교회의 모든 행사가 항상 풍성한 축제가 되도록 앞장서서 항상 그가 있는 곳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화목의 일꾼이기도 하다.
1993년, 서울 한길교회에서 시무했던 엄갑철 장로는 홍산면 토정리에 농장을 세우면서 홍산교회에 등록했고 1995년 12월 협동장로로, 1997년 2월 16일 10대 시무장로 취임하여 구역 강사와 성가대장으로 교회를 섬겼으며, 2001년 석성면으로 이주하면서 자원은퇴를 했다.
2001년 11월 6일 홍산교회 당회는 장로 1인과 권사를 세우기로 하여, 박낙순 씨를 11대 장로 로 임직하고, 이응수 등 9인의 명예권사 추대, 유환문 등 10인의 권사 임직식을 거행했다. 박낙순 장로는 청년 시절 앓았던 질병에서 치유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홍산에 정착하여 목공소와 떡방앗간을 운영하면서 교회에서 예배하고 봉사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홍산교회는 2006년 11월,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와 함께 김맹수 등 11인의 권사 임직식을 거행했고 이날, 김성수 목사가 집필한 “홍산교회 100년사”를 출판했다.
3. 홍산교회 부 교역자들과 새 일꾼들(2008년 ~ 2019년)
2008년 1월, 홍산교회에 김용연 전도사가 부임했다. 김 전도사는 홍산교회의 어린이, 중고등부, 청년부 담당 교역자로 7년간 시무하며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데 힘썼으며, 2014년 12월 사임했다. 2015. 1월에는 백종국 목사가 홍산교회의 첫 부목사로 부임했다. 백 목사는 다음 세대 양육과 예배와 찬양 사역뿐 아니라,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교회 행정에도 힘썼고, 음악을 전공한 엄난용 사모 또한 찬양 사역과 반주자로 쓰임을 받았다.
2009년~2015년까지, 홍산교회는 성장을 계속했고 교회를 섬길 새 일꾼들을 세워 나갔다. 2009년 10월 31일, 교회는 왕창국, 이상목 씨의 12대 장로 임직 예식과 함께 26년 동안 성실하게 시무장로로 교회를 섬겨온 백복현 장로를 원로장로로 추대했다. 이날 교회는 이화경 씨 등 6인의 권사 임직식을 함께 거행했다. 2012년 11월 10일에는 이춘화, 최병갑 씨의 13대 장로 임직 예식과 함께 박성중, 이우찬, 왕창국 원로장로 추대, 임용재, 이학선 2인의 안수집사 임직과 이공규 씨 등 14인의 권사 임직, 임시준 씨 등 8인의 명예권사 추대 예식을 가졌다. 2015년 11월 28일, 교회는 이학선, 임용재 씨의 14대 장로 임직 예식과 함께, 이춘화 원로장로 추대와 이철교 등 9인의 권사임직식, 명예권사 추대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2016년 11~12월까지, 홍산교회는 그동안 숙원사업이었던, 교회당 전체 리모델링 공사와, 연로한 성도들을 위한 엘리베이터 신설 공사를 진행하여, 신축 후 22년 동안을 지탱해 온 교회당을 새롭게 단장했다.

12왕창국 장로 12대 이상목 장로 13대 이춘화 장로 13대 최병갑 장로 14대 이학선 장로 14대 임용재 장로
32년 동안 홍산교회를 목회하며 교회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김성수 목사는 2019년 3월 대전노회 정기회에서 은퇴한 후, 홍산교회 원로 목사로 추대되었다.
한국교회의 위기 앞에 선 홍산교회(2019년 ~ 2026년 현재)
2000년 새 밀레니엄 시대 이후, 한국 사회는 경제적 풍요와 함께 문화적 욕구가 급증하면서,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었고, 2019년 말부터 교회의 모임과 집회가 온라인 집회로 대치되었던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교인은 감소하고 특히 어린이와 젊은 세대들의 탈 농촌, 탈 교회 현상은 급속하게 진행되어, 농어촌은 고령의 노인들만 남겨진 마을이 되어갔다. 한국교회와 특히 농촌교회에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1. 코로나 팬데믹과 오세봉 목사(2019. 8. 25 ~ 2024. 5. 26)
2019년 8월 25일,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가 시작되기 직전, 오세봉 목사가 홍산교회에 부임했고, 11월 9일 제7대 담임 목사로 취임했다. 오 목사는 취임 직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 예배를 시작해야 했고, 연이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원로 장로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이춘화, 왕창국, 최병호 장로).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홍산교회를 통해 선교의 사명을 이어가게 하셨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가 어려울 때, 서울에서 음향과 특수조명 사업을 하는 왕중열 집사(왕창국 원로장로 子弟)가 교회 음향 일체를 기증하여 시공해 주었고, 교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