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백남철 장로 복직
이춘원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백남철 장로에 대한 노회에 복직 안을 제출했고 1948년 4월 6일 노회는 백남철 장로의 복직을 허락했다. 정직 후 9개월 만의 일이었다. 백 장로가 복직되면서 교회는 그동안 서로 소원했던 성도들의 관계가 다시 화해와 일치의 분위기로 바뀌었고 실망과 낙심으로 교회를 떠났던 성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1947년 7명이던 제직 수는 1948년 15명으로, 1948년, 49년 세례 학습 교인의 수는 각각 28명, 23명이나 되었다.
나. 6.25 한국전쟁과 뿌리 깊은 나무
6.25 한국전쟁은 한민족의 역사 가운데 가장 깊은 갈등과 상처를 안겨주었고,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홍산교회는 온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고, 지역사회를 섬기며, 아름다운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순교의 열매를 맺은 시기이기도 했다.
사랑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교회
무엇보다 홍산교회와 이춘원 목사가 지역사회에 깊은 신뢰의 뿌리를 내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인민군들이 홍산 지역에 들이닥치면서 그들이 숙청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춘원 목사의 생명이 위급해지자 홍산 지역의 백정들이 교회의 사택으로 몰려와 밤낮으로 보초를 서주었고 이로인해 이 목사는 기적처럼 그의 생명을 건졌기 때문이다. 교회와 지역사회가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신뢰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순교의 꽃을 피운 교회
또한 6.25 한국전쟁을 통해, 홍산교회에서만 4명이나 되는 순교자의 피가 흘려졌다. 모두가 예수를 믿고 주님을 따르기 위한 거룩한 순교였다.
백남철 장로는 홍산교회 첫 순교자의 반열에 섰다. 1950년 8월 2일 백 장로는 교회의 우두머리로 지목받아 인민군 치안소(홍산현 동헌자리)로 끌려와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도, “나는 평생 예수 믿고 가지만, 당신들이 딱하오!”라는 굵고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긴 후, “하늘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부르며 구룡면 동방리 뒷산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박인규 집사는 30대부터 서리집사, 주일학교 교사직뿐 아니라 설교 내용을 기록한 노트를 여러 권 남길 만큼 기독교 진리에 심취했다. 박 집사는 교회의 골수분자로, 동아일보 지국장과 우익 단체인 대한청년단 홍산 선전부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과 취조를 당한 후, 1950년 9월 28일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난사한 총에 맞아 40세를 일기로 순교했다.
이민우 집사는 양복점과 인쇄소를 겸업하며 생업에 성실했고, 애국심이 강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한 혐의로 1940년, 정읍 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한 후, 1949년부터 서리 집사로 충성하며 당시 좌, 우익 대립으로 사회가 혼란할 때, 교인들에게 반공 의식을 심어준 주동자로 인민군에게 체포됐고 대전 형무소에서 고초를 당한 후, 1950년 9월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임세욱 성도는 1901년 평안남도 순창군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월남하여 홍산에 정착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6,25 전쟁 때, ‘월남한 이북 출신 기독교인’을 가장 적대시했던 인민군은 김세욱 집사를 체포해 대전 형무소로 보냈고, 그곳에서 갖은 폭력과 고문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다, 1950년 9월 26일 패퇴하던 인민군들의 총부리에 5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고난 앞에 서보아야 진실은 드러난다. 홍산교회 역사에 남겨진 순교자들의 아름다운 희생과 믿음의 절개는 시대를 넘어 영원히 그 아름다운 자취를 남길 것이다.
다. 한영수 전도목사, 고재호 2대 담임목사(1952년 ~ 1961년)
6.25 전쟁으로 4명의 성도가 순교한 중에도,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있던 이춘원 목사는 1950년 가을, 제2 고향인 금산에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고 출타한 후, 그곳 소영교회에서 설교하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홍산교회는 백남철 장로의 순교에 이어, 이춘원 목사의 갑작스러운 소천으로 한동안 낙심 가운데 있었으나, 마침 홍산교회 장학금으로 신학 공부 중인 한영수 전도사가 1951년 3월, 홍산교회 교역자로 부임했고, 1952년 3월 12일 제8회 충남노회에서 홍산교회 전도 목사(판교교회 겸임)로 청빙 받아 목사임직을 받았다.
한영수 목사는 교단 분열의 가장 치열한 분쟁지였던 홍산교회에서 기장의 정통성을 묵묵히 지켜냈다. 홍산교회 이봉희 장로(2대)가 “담임목사가 결정하는 노선에 따라 교단을 결정”하자는 충남노회 결의안을 무시하고 조선신학교 출신 한영수 목사의 정통성을 부인하며 격렬하게 투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법원의 확정판결과 노회가 이봉희 장로를 제명한 이후에야 모든 폭력적인 시도를 중단하고 물러갔다. 그러나 홍산교회는 함께한 교인들을 제명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깊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교인은 감소했고 성도 간의 사랑은 식었으며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한영수 목사는 1956년 10월 홍산교회를 사임하고 논산교회로 떠났다.
한영수 목사의 후임으로 온 고재호 목사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 4월 홍산교회 제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961년까지 4년 동안 재직했다. 고재호 목사는 홍산교회에 부임한 직후 박종서 피택장로를 임직하여 3대 장로로 세웠고, 그해 4월 18일 무정리 교인들의 염원이었던 무정교회 분립 예배를 드렸다. 고재호 목사가 시무한 4년 동안은 목회자와 교회가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피차 많은 “갈등과 아픔”을 겪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교회는 양편으로 갈라져 대립했고 그 상처는 깊었다.
5. 홍산교회의 안정기(1961년 ~ 1986년)
1961년 안기중 목사가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제4대 김갑배 목사(1968-1972), 5대 김승재 목사(1973-1986)에 이르는 25년 동안, 홍산교회는 그동안 겪었던 많은 위기와 시련의 언덕을 넘어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다져간 시기였다. 홍산교회의 3~5대 담임목사는 모두 군종 목사로 재직한 공통점이 있다. 이 기간, 군조직 안에서 원칙에 충실하며, 상호 간 조화와 단합을 중시했던 군목 출신 목회자들에 의해 홍산교회는 안정기를 이루 어갔다.

안기중 3대 담임목사 김갑배 4대 담임목사
가. 교인을 하나로 모으고, 인재를 키운 안기중 목사(1961년 ~ 1967년)
제3대 안기중 목사는 집이 가난하여 초등학교 졸업 후, 강의록으로 중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통과했을 만큼 어떤 환경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성품을 지녔다. 그래서 그가 맡은 교회들을 모두 하나 되게 하고 성장시키며 특히 그의 주변에 있는 많은 믿음의 인재들을 발굴하여 키워냈다.
안 목사는 부임 직후인 1961년 12월 9일 9명의 성도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 중, 백복현 성도는 홍산교회 장로로, 임명규 성도는 한신으로 진학 후 교단 총회장을 역임했고 1967년 세례받은 서기창 성도는 한신을 거쳐 본 교단 목사가 되었다. 또한 안 목사는 부임 후 3년 만인 1964년 3월 이승태, 박건화, 임항재 3인을 4대 장로로 피택하고 장로 고시 후, 같은 해 12월 8일 장로 임직식을 거행했다. 일찍부터 교회에 다니며 여러 분야에서 성실하게 봉사하며 체신공무원으로 새벽기도를 쉬지 않았던 이승태 장로,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2차 교회당 건축시 백미 50가마를 바쳤던 박건화 장로, 홍연교회 집사로 교회를 건축하는데 자신의 몸을 드려, 밤마다 교회당 건축공사에 헌신했던 임항재 장로와 함께 홍산교회를 든든한 교회로 세워갔다. 또한 1966년 6월 156평의 주변 땅을 매입하여, 현재의 예배당을 건축할 터전을 마련했고, 목사관으로 주택 1동을 매입하기도 했다.

3대 박종서 장로 4대 박건화 장로 4대 이승태 장로 4대 임항재 장로 5대 임만재 장로
나. 힘 있는 설교와 두 번째 예배당을 건축한 김갑배 목사(1968년 ~ 1973년)
제4대 김갑배 담임목사는 1968년 1월에 홍산교회에 부임한 후, 5년여 동안 힘 있고 생동감 있는 설교로 성도들의 신앙을 올바른 말씀 위에 세웠고 모든 교회 일을 당회를 중심으로 질서 있게 실천해 갔으며, 그의 임기 중 두 번째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기도 했다. 또한 김 목사는 자신이 부임했던 1968년, 홍연교회에서 이명(2월) 해 온 임만재 장로를 협동장로(4월 14일)로, 동년 12월 15일 주일에는 공동의회 의결을 통해 제5대 시무장로로 시무하게 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철저한 계획이나 사전 준비 없이 돔 형태의 십자가 첨탑이 있는 70여 평의 시멘트 벽돌 교회당을 서둘러 시공했고 이로인해 공사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3년 9개월로 늘어난 공사 기간 중, 군산 원당교회의 청빙을 받아 떠났다.
3. 겸손한 성품과 성실함으로 섬긴 김승재 목사(1973년 ~ 1986년)
제5대 김승재 목사는 1973년 8월 31일, 20년 간의 군목생활을 마치고(중령 예편), 1973년 11월 20일 홍산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오랜 군목 생활에서 민간 목회로 전환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으나. 겸손한 성품과 친화력으로 13년 동안 성실하게 교회를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