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1월에 부임한 최 전도사는 1991년 11월 임시노회에서 백석포교회 전도목사로 임직을 받았고 지속적이며 건강한 교회성장을 위해 교회를 섬기고 지역선교에 헌신할 충성된 일꾼들을 하나씩 세우기 시작했다. 1992년 2월, 백석포교회 첫 권사로 이종희, 심영애, 이순희, 박병례, 이종애 씨 등 5인을 임직한 것을 비롯하여, 1998년 이영분 권사, 2003년 2월, 이인희, 김영숙, 이용자, 이문주, 한미혜 권사, 2009년 2월 이대순, 김연태, 연영희 권사, 2015년, 11월 이창희, 박선영, 박명숙, 송순자, 진점순 권사를 임직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땀 흘려 뿌린 전도부흥과 양육 훈련의 열매였다.
1996년 8월에는 온 교회가 힘을 모아 목사관을 건축했고, 2001년 5월에는 다음세대 교육과 성도들의 코이노니아를 위해 교육관 겸 식당을 건축했다. 2003년 5월에는 예배당을 증축하여 유아실을 만들고 그와 함께 낡은 예배실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그리고 2006년 9월, 백석포교회는 이태섭, 이광식씨를 장로로 임직하고 최 목사를 제 1대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취임식을 거행했다. 백석포교회가 당회를 구성하여 ‘조직 교회’가 된 것이다. 창립 29년 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룬 교회성장의 열매였다.
백석포교회의 선교와 봉사(디아코니아) 이야기
백석포교회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최 목사의 눈에 어렵고 힘든 주변의 교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백석포리 지역을 복음화 하는 일을 넘어 복음증거의 일선에 서있는 어려운 교회들과 연대하여 온 세계를 향해 함께 힘을 모아 선교하는 대열에 서고자하는 열망이 생겼다. 최 목사는 먼저 교인수와 재정이 열악한 농촌교회는 선교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농촌교회도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성도들을 깨우치고 오랫동안 설득했다. 그리고 부임 초기부터 어려운 교회들을 선정하여 선교비를 보내기 시작했다. 백석포교회의 선교방식은 조금 특별한 데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작은 선교비로 다수의 교회나 선교사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백석포 교회는 소수의 교회에 집중해서,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지원 대상을 3교회로 좁히고 매달 한 교회에 40만원씩을 지원하는 일 - 간혹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2-30만원씩을 보낼 때도 있었지만 – 을 지난 3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지속해왔다.
장학사업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인 중에서 학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가정 초, 중, 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점차 그 대상의 폭이 넓어져 지금은 지역을 선교하교 세상을 섬기기 위해 지역의 모든 학생들을 대상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장학금은 연 2회, 대학생 100만원, 중, 고생은 60만원, 초등생은 20만 원씩을 지급한다. 교회는 장학위원회를 1-3년차로 조직하고 매년 1차년 위원을 교체하여 가능한 많은 교인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매년 봄에 떠나는 "경로효도여행 가을에 떠나는 남신도회 부부수련회
백석포교회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으로 섬기고 교제하는 일을 오랫동안 계속해오고 있는 일들이 있다. 하나는 봄(4,5월)에 떠나는 “경로 효도여행”이다. 연로하고 몸이 불편해서 거동하기 어려운 교인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차례씩 꽃피는 봄을 기다려 “경로여행”을 떠났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모처럼 집과 동네를 떠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경치 좋고 물 맑은 곳으로 떠난다. 이름 그대로 교회의 젊은 성도들은 교회의 어른 성도들께 “경로, 효도”를 선물하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 성도들은 교회의 젊은 성도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섬기는 행복을 맛보는 “뜻 깊은 여행”을 선물한다. 모두가 함께 사랑과 섬김을 주고받는다. 30년 동안 계속해 온 이 행사를 위해 교회는 2개월 전부터 온 정성을 기울여 준비하고 세밀하게 계획한다. 연로하신 분들이기에 장소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교통편, 중간방문지 등을 세심하게 살핀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 젊은 교인들로 도움이를 편성하여 섬기게 하고 차안에서 필요한 음료와 간식을 정성으로 준비한다. 무엇보다 그 날 음식은 모든 어르신들이 대 만족할 만큼 최고의 진수성찬으로 준비한다. 재정도 그해 예산에 반영하여 준비하고 성도들이 자원하여 드리는 헌금이 차고 넘쳐 항상 모자람 없이 풍족했다. 온 교회가 1년 동안 모두가 행복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또 하나는 가을에 떠나는 “남신도 회원 부부수련회”이다. 지난 20년 동안 매년 10-11월경에 2박 3일 코스로 60대 이상의 부부가 자비량(自備糧)으로 재정을 마련하여 진행해 왔다. 함께 먹고, 자고, 여행하면서 경험하는 친밀감은 매일 아침 최 목사가 인도하는 경건회와 예배를 통해 더 심화되고 정화된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고 부부가 함께하는 교제를 통해 온 성도가 사랑과 신뢰로 하나가 된다. 그동안 백석포교회가 내부적인 분란이나 큰 소동 없이 하나 됨을 이루어 온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남신도 부부 수련회”는 이 하나 됨의 은혜를 매년 함께 나누고 공유해 온 것이다.
백석포교회에 헌신한 일꾼들 이야기
최 목사는 백석포교회를 ‘개미군단교회’로 불렀다. One Team 교회라는 뜻일 게다. 소수의 헌신된 일꾼들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들이 많다. 그러나 백석포교회는 무슨 일을 해도 소수만 참여하여 발을 동동 구르는 법이 없다. 항상 온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 일한다. 백석포교회의 또 다른 이미지는 “강골교회”이다. 말씀과 기도로 부단히 훈련된 교인들은 여러 가지 형편과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잘 이겨내고 극복한다. 주님의 일, 교회의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 성가대원 중에 악보를 아는 대원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분량이 많고 어려운 악보라도 서로 돕고 협력하여 기어이 찬양연주를 해낸다. 10여명이 조금 넘는 성가대원 중에 자신의 자리를 비우는 대원은 없다. 함께 뭉치고 힘을 합해 항상 은혜와 감동이 충만한 찬양을 한다. 그래서 교회행사시에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에 여러 목회자들이 조금 놀라며 은혜 받았다는 인사를 건넬 때가 많다.
그래도 그 중에 몇 분의 헌신자들을 꼽아본다. 이태섭, 이광식 장로는 백석포교회의 첫 장로로 함께 임직을 받고 교회를 신실하게 섬겼다. 이태섭 장로는 천사 같은 분이란 말을 들을 만큼 그 심성이 선하여 항상 교회에 덕이 되고 온 가족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웠으며 성도들을 따뜻하게 품었다. 지금은 원로장로로 교회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고 있다. 이광식 장로는 오랜 공직생활이 몸에 익은 원칙과 소신이 강한 성품으로 변함없이 교회를 섬기는 자리에 서왔으며, 지금은 유일한 시무 장로로 목회자 곁에서 든든하게 최 목사의 신실한 협력자로 섬기고 있다. 앞선 두 장로와 함께 피택을 받았으나 자신의 부족함을 이유로 겸손하게 장로직을 사양한 이창희 권사는 교회의 모든 일을 묵묵히 뒷바라지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는 일꾼이다.

백석포교회 당회원(좌, 이광식 시무장로 우,이태섭 원로장로) 최재선목사와 이경수 사모
백석포교회의 온 성도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두 권사가 있다. 이용자 권사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1996년 목사관을 건축할 때 마침 직장을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을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믿음이 약한 남편은 찬성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기도하며 설득했고 결국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500만원 전액을 봉헌했다. 이종희 권사는 백석포교회의 기도대장으로 불린다. 올 해 90세인 이 권사는 10년 전 기도 중에 큰 감동을 받고 주님을 위해 한 가지를 결심했다. 머지않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이 평생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교회가 목적하는 선한 사역을 위해 ‘1천만 원’을 생전에 봉헌하겠다고 본인의 입술로 크게 ‘선포’한 것이다. 놀랍게도 올 해, 크게 사업하는 장로 아들을 통해 1천만 원이 들어왔고, 이 권사는 자신의 소원을 생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그 헌금을 올려드렸다. 감사하게도 백석포교회에는 이런 저런 목적으로 적립된 헌금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최목사 부인인 이경수 사모의 주님과 교회를 향한 헌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목회자 사역의 절반 이상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모들의 몫이다. 성도들을 위한 기도와 상담, 성가대 연습과 반주, 담임목사 뒤에서 모든 목회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로 늘 벅차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부모의 자랑이요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 교사임용고시를 앞두고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 앞에 최 목사 부부가 함께 끝없이 가슴아파했지만 그 고통의 자리를 박차고 먼저 일어난 것은 이경수 사모였다. 어미로서의 뼈저린 아픔과 고통마저 주님을 위해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인 최 목사를 부추겨 일어서게 했다. 지금 그의 약해진 몸은 그 고통을 넘어서며 남은 흔적이다. 최 목사는 아내와 함께 일어섰고 그 후로는 자신의 세상을 향한 욕심을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포기했다. 그에게 지금 남은 것은 그를 일으키신 주님과 그가 세우신 백석포교회 뿐이다. 최 목사는 지금도 오후 두시가 되면 항상 예배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는다. 이것이 지금 그가 사는 의미요 목적이다. 그와 함께 백석포교회는 이 어둠의 시대를 이기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로 세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