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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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이야기

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1시찰] 십자가교회 이야기 - 1

김진수 2021-05-05 (수) 09:05 4년전 885  

두 교회가 십자가로

하나 됨을 이루어 가는 교회

 

교회합병은 서로 하나가 되는 순간부터 하나 되기 어려운 난제를 품게 된다. 흡수통합의 경우, 하나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되고, 쌍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연합할 경우,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늘 갈등상태에 있거나 상처를 입고 다시 나누어지기도 한다. 두 교회가 서로의 모자란 부분(교인, 교회건물, 재정, 부채, 목회자 은퇴 등)을 채우기 위해 합병을 하는 경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합병의 후유증과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다.

 

대전노회 안에서 두 교회가 합병하기로 했다. 천안에 있는 십자가 교회흰돌 교회십자가 교회로 합병하는 안()이 대전노회 제 77회 정기회에서 허락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교회의 합병, 그 이면에 존재하는 특별한 사연과 또한 두 교회의 합병이 하나 됨의 새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교회 합병 안이 노회에 통과된 후 필자는 십자가교회를 개척하고 77회 정기회에서 은퇴한 김정옥 목사와, 천안 흰돌교회를 개척하고 십자가교회와 합병한 후, 새롭게 십자가교회의 당회장이 된 엄기수 목사를 함께 만나 두 교회가 그동안 걸어온 이야기, 그리고 합병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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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교회의 합병을 이룬 김정옥 목사와 엄기수 목사

 

십자가교회 이야기

 

십자가교회이야기는 김정옥 목사가 주님을 따르면서부터 품고 살았던 십자가이야기와 맞닿아있다. 김 목사는 사랑의 주님을 눈물로 만나면서 그의 첫 십자가를 가슴에 품었다. 26세가 되던 19765, 홀로 다섯 딸을 키우며 사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담임목사인 백형기 목사(농천교회, 증경 총회장)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는지 고비를 넘긴 어머니는 2개월 동안 둘째 딸(김 목사)과 함께 열심히 새벽기도를 드리다 끝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동행이었던 2개월 새벽기도의 체험은 김 목사의 삶에 새 문을 열었다. 참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을 미련 없이 주님께 올려드렸고 돌볼 사람이 없었던 동생들을 위해 결혼을 포기했다. 22년 동안 오직 교회를 위해 강단 꽃꽂이, 교사, 성가대, 여신도회, 유치원 총무 등, 모든 일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불살랐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부활의 주님이 그 안에 사는 성전이 되었다. 주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헌신을 바라보던 교회는 한 교회만을 위한 섬김에서 이제는 만인을 위한 섬김의 삶으로 파송하기 위해 그를 루터신학대학수학(受學)을 추천했고 루터신학대학, 대학원, 한신대학원 위탁교육과정을 거쳐 본 교단의 준목이 되기까지 물질적, 영적 후견인이 되어 주었다.

 

김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면서 두 번째 십자가를 가슴에 품었다. 주님을 만나면서부터 22년 동안 온전히 수원농천교회 안에서만 살았다. 늘 아버지 같은 담임목사와 한 형제자매 같은 교인들 가운데 있었다. 당연히 농천교회의 청빙으로 목사안수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의 소명은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곳에서 왔다. 199810월 어느 날, 수원농천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함께해온 한은진 집사가 찾아와 그의 소중한 옥합, 100평의 땅(천안 소재)을 내놓으며 주님을 위해 교회를 개척하자고 권유했다. 백형기 목사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천안에 있는 지인 설계사의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혈혈단신 아무 연고도 없는 천안 땅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해 그가 가슴에 품은 두 번째 십자가였고 늘 그랬던 것처럼 아멘으로 응답했다.

 

십자가교회 건축과 부흥

 

그러나 현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잡초가 우거진 교회부지 백 평, 그것이 전부였다. 아무 것도 없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 그 백성을 이루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19998, 교회 건축은 시작되었고 이때, 어려움을 이겨내고 가정과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운 김 목사의 형제들이 기꺼이 앞장서주었다. 그것은 실로 큰 기적의 열매였다. 큰 언니 김정순 집사는 여관을 운영하며 얻은 소득전액을 매 주 예배 때마다 봉헌했고, 동생 김정호 집사는 약사인 남편과 함께 화성에서 예배드리러 오면서 매주 30만원씩의 건축헌금을 드렸다. 한 조카는 초등학교 6년 동안 모았던 돈 전부를, 또 다른 조카는 영어대회에서 우승한 상금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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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8월 십자가교회 기공식()                                               완공된 십자가 교회


빈손으로 교회를 건축하면서 수많은 고비를 넘었다. 건축비를 중간정산 해야 할 때마다, 그리고 건축 후 부채를 다 상환하기 까지 겪은 위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김 목사가 그의 젊음을 바쳐 헌신했던 모 교회 성도들로부터 큰 사랑의 빚을 지게 하셨다. 추석을 앞두고 인부들이 밀린 인건비 정산을 강력히 요구했다. 당해본 사람만 안다. 팔을 걷어 부치고 육두문자로 거세게 밀어붙이는 압박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도움을 줄 사람이 보이지 않았을 때,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모() 교회의 한 권사님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남편이 은퇴할 때 십일조헌금을 정산하지 않은 통장 하나를 발견하여 그 금액에서 십일조 600만원을 뗀 돈을 헌금으로 드렸다. 그 천금 같은 헌금으로 추석 때 밀린 임금을 지불했고 죽음까지 생각했던 김 목사에게 위로와 기쁨을 선물했다. 입당예배를 드리던 날, 설교자는 교회 건축 후 남은 부채상환을 위해 헌금을 부탁했고 예배에 참석한 모() 교회의 한 장로님은 1,500만원을 약속하고 돌아가 5,000만원을 송금해주신 일도 있다. 그 장로님의 누이인 권사님은 십자가교회를 위해 늘 꽃꽂이로 봉사해 주셨고, 매주 내려갈 수 없다며 마티즈(승용차)”를 선물해 주신 분이다. 우리는 돈과 물질의 오용과 폐해를 수없이 목도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가진 재물이 이렇게 거룩하게 쓰이고 아름답고 눈부시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

 

19998월에 건축을 시작하고 그해 12월 성탄절에 입당예배를 드렸다. 교회를 건축한 후 십자가 교회에 부흥의 은총이 임했고 해를 거듭하면서 교회는 성장했다. 교회 부지를 헌납한 한은진 집사는 매주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종이접기로 큰 인기를 얻었고, 큰 언니의 딸 김성미 전도사는 한신대 기독교교육과를 다니며 매 주 교회에 내려와 모든 교육파트를 헌신적으로 섬겼으며 조카들이 주동이 된 주일학교는 교회를 뜨겁고 활력 있게 만들었다. 남편을 일찍 하나님 품으로 보낸 막내 김정란 권사는 교회의 살림꾼으로 매 주일 식사 대접과 하기학교 봉사, 교회행사에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 그리고 정기적으로 실시한 지역노인들을 위한 목욕 봉사에 항상 발 벗고 나섰다. 그의 맏딸 지혜는 피아노 반주자로, 동생 지연은 교사와 성가대로 헌신했다. 그러나 가족중심의 십자가교회를 균형 잡힌 교회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 분은 이진우 장로 가정이었다. 호서대 교수였던 이 장로는 겸손히 교회의 다음세대 양육에 힘을 쏟았고 토요일마다 학교 앞에 가서 교사들과 함께 전도했다. 그 부인 서선주 집사는 조용히 교회가 필요할 때마다 섬기는 일에 동참했다. 이진우 장로로 인해 전도된 분들이 교회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게 했다. 희생과 헌신의 열매는 아름다웠고 십자가교회는 작지만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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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어린이교회학교 겨울수련회                    중) 교회제직들과 함께                  우) 성탄절 행사를 마치고

 

십자가, 무한 영광의 십자가

 

찬송 십자가로 가까이’(439)는 그 후렴에서 십자가의 영광을 노래한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가장 큰 영광은 십자가의 영광이라는 고백에서는 항상 목이 멘다.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생명을 죄인을 위해 내어주신 사랑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 그런데 기가 막힌 자기희생의 십자가이야기가 십자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2010년을 고비로 갑자기 십자가교회에 전심으로 헌신했던 분들이 하나 둘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개척 초기부터 온 마음을 다해 교회를 섬겼던 조카 김성미 전도사는 위암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젊고 예쁘고 헌신적이었던 김전도사의 죽음은 십자가교회에 큰 충격과 아픔을 주었다. 교회 부지를 헌납하고 김 목사를 도와 교회를 뜨겁게 사랑했던 한은진 집사도 너무도 아쉽게 이른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십자가교회 건축에 자신의 수입 전부를 봉헌하며 섬겼던 큰 언니는 딸 김전도사의 뒤를 따라 70대 중반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약국을 하며 교회의 신실한 일꾼으로 섬겼던 김정호 집사도 암으로 소천했다. 불과 수년 사이에 욥의 고난처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십자가교회를 위해 모든 것 다해 헌신했던 이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 일들이 숨 쉴 수 없을 만큼 연이어 일어났다. 그리고 온 가족이 교회의 기둥같이 쓰임 받았던 막내 동생 김정란 권사 가정은 모두 이런 저런 사정으로 교회를 떠났다. 반주자 큰 딸은 미국인과의 결혼으로, 한신대 신대원을 나온 둘째 딸은 다른 교회사역으로, 김 권사는 카나다 한국인 목사와의 재혼으로, 막내인 두 쌍둥이 형제는 재혼한 엄마를 따라 카나다로, 모두가 사랑했던 십자가교회를 떠났다. 교회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리고 끝내 교회의 신실한 일꾼으로 헌신했던 이진우 장로 가정마저 큰 시련의 바람 앞에 흔들리며 갈등하다 결국 말없이 교회를 떠났고 그의 전도로 나왔던 성도들도 하나 둘 흩어지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충격적인 고난을 당한 욥처럼 열 입이 있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죄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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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교회 강단 뿌리까지 있는 나무 한 그루로 만든 십자가 


김 목사는 은퇴를 앞두고 스스로 져야 할 마지막 십자가 앞에서 수년을 씨름하며 기도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생명처럼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예배당을 세우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다 홀연히 주님 앞으로 떠난 이들의 순전한 희생과 헌신을 가장 아름답게 계승할 수 있는 방법만을 찾고 또 찾았다. 어느 날, 자신의 전부와도 같은 십자가교회 예배당에 대한 모든 권한을 다 포기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인수할만한 능력은 없지만 다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오직 온 마음을 선교에 쏟고 헌신하고 있는 흰돌 교회를 찾아 그 목사님에게 단 하나만 요청했다. “십자가 신앙, 십자가 정신 하나만 계승해 주십시오!” 그래서 십자가 교회는 희생으로 세워진 예배당과 함께 십자가 신앙을 물려주고 흰돌 교회는 십자가 신앙을 계승할 교회가 되어 십자가 교회로 한 몸, 한 교회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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