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이야기 – 4, 송학교회이야기
송림에, 학이 날아오는 마을
옥토에 뿌리 깊고, 가지 잎 무성한 교회
부여를 지나 홍산으로 향하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좌측으로 ‘송학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고 마을을 지키는 남녀대장군이 눈을 홉뜨고 서있을 법한 자리에 십자가 종탑이 하늘높이 솟아있는 “송학교회”가 보인다. 마치 이 마을을 지키려고 우람하게 서있는 형상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송학교회가 서있는 옆길을 따라 집을 나서기도 하고 마을로 들어오기도 한다. 송학리는 예로부터 우거진 송림이 많았고 그 위로 학들이 날아들어 마을이름을 “송학리(松鶴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인근의 4차선 큰 도로만 아니면 교회 너머로 한적하고 풍요로운 들녘이 넓게 펼쳐지고 산기슭에 우거진 솔밭에 학들이 날개 짓을 하는 평화로운 옛 마을의 풍경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송학마을 입구에 세워진 송학교회
송림마을에 날아온 복음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농토를 개간하여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부여군지 제1권–부여의 지리<부록>) 소나무골, 송학리에 1955년 봄, 눈부시게 하얀 학 한 마리가 찾아와 새둥지를 틀었다. 3월 3일, 세도면 청송교회(현 세도교회) 강희준 장로와 집사 몇 분이 찾아와 생명과 구원의 예수 복음을 전한 것이다. 푸른 소나무 위로 학이 날아와 앉듯, 그날 자비량 전도 집회가 계기가 되어 예수 믿기로 작정한 결신자들이 나왔고, 이들은 ‘윤병금’씨 댁에서 문병옥 전도인의 인도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마치 겨자씨처럼 항상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보잘 것 없는 데서부터 시작되지만 그 영향력은 크고 견실해서 세상을 뒤덮고 바꾸고 새롭게 한다. 송(松)과 학(鶴)의 만남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조합인가? 55년 3월 이른 봄, 송학리에 뿌려진 복음은 길가나 돌짝밭이 아니라 옥토에 심은 것처럼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고 자라기 시작했고 마을주민이나 다른 종교와의 큰 충돌 없이 성장했다. 놀랍게도 그 해 12월 22일 한산교회에서 회집된 충남노회 제 11회 제 2차 임시회에서 설립공인이 되었다. 교회가 시작 된지 9개 여월 만에 교회를 이끌어갈 목회자가 있고 세례 받은 교인들이 있고 예배당이 있는 공식 교회로서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송학교회 초기 교인들
옥토에 뿌리는 깊어
교회의 역사는 먼저 그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이들을 통해 뿌리를 내리며 성장한다. 문병옥 전도인(1955.3~1960.7) 이후 1년 반 동안에는 여러 집사님들이(김윤옥, 윤병금, 박흥수씨 등)이 예배를 인도했고 박종서 장로가 3년여 동안(1962.2~1965.4) 헌신적으로 송학교회를 섬기기도 했다. 그 뒤를 이은 20대의 정의창전도사(1965.8~1970.9)는 그의 젊은 열정을 쏟아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다. 젊은이들과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교회는 성장했다. 그때 온 교회가 힘을 모아 시멘트 블록으로 35평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미니 목사관으로 초가 8평을 건축했다. 송학교회 역사에 소중하게 기록된 첫 예배당, 첫 사택 건축기록이다. 구재철 목사(1971.10~1974.7)가 그 뒤를 이어 교회를 섬겼고 이 때 송학교회는 이백규 장로를 초대장로(1972.12~1988.12)로 임직하여 첫 조직교회가 되었고 이어서 강용식 장로(1974.7~1978.10)를 장립했다. 고창석 장로(1974.7~1978.10)는 교회를 갑자기 사임한 구재철 목사가 후임 목사가 부임할 때까지 잠시 교회를 섬기도록 추천한 분이었는데 4년여 동안 송학교회를 시무하면서 대지 250평, 건평 74평의 예배당을 건축했다. 이 예배당은 여러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고 장로 이후 3여년을 시무한 구홍회 목사(1979.2~1981.11)를 이어 부임한 이상호 목사(1982.7~1984.12)는 짧은 재임기간 중에도 목사관을 건축했고 수요일예배시간에 “성민대학”을 개설하여 하나님의 백성(성민)으로써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김성수(1985.8~1987.5) 목사가 시무하던 시기에 장로임직을 함께 받은 이준희, 김여택 장로(1986년 12월 임직)는 송학교회를 열정적으로 섬긴 일꾼들이었고 이어 시무한 홍주완(1987.7~1993.10) 목사는 교회를 안정시키고 견고하게 세우는데 힘을 쏟았다. 류인환 장로(1990.5)와 나병찬, 이태세(1992년. 5월) 장로를 임직하고 교육관부지 400여 평을 매입하여 교육관 35평을 건축했다.

1) 정의창 전도사와 주일학교 졸업생(뒷쪽에 사택) 2) 송학교회 첫 35평 예배당 3) 1978년에 신축된 예배당
이종화 목사(1994.1~2003.5)는 교세가 약한 동네 전도를 위해 마을회관을 찾아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 국수를 삶아 식사를 대접하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었고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온 마을에 선물을 돌리고 동네 애경사에 참여하여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성서대학(크로스웨이)을 열어 믿음의 성숙을 위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교회 리모델링 공사, 교회시설 증축에도 힘썼다. 함께 동역한 김영평 장로(2001. 11)는 현재까지 교회를 섬기는 시무장로이기도 하다. 지금은 조남극 목사(2003.9~2009.11)에 이어 김승현 목사(2009.12현재)가 시무하고 있으며 강희섭, 추수영 장로(2011, 5)와 정만교 장로(2017.5)를 임직하고 예배당 리모델링을 통해 음향 영상장비를 설치하는 등 12년째 교회부흥과 성숙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좌) 송학교회 당회 - 김승현 목사, 정만교, 김영평장로 (우) 송학교회 원로, 시무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