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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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이야기

대전노회 교회 이야기

[3시찰] 홍연교회 이야기 - 2

김진수 2026-05-30 (토) 17:55 10일전 50  

1. 홍연교회 여신도들의 특별한 교회사랑

 

1920~40년 대의 전북노회록에 따르면 홍연교회 여신도회원들이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겼다는 기록들이 시찰 보고와 선교부 보고에 여러 번 등장한다. 이는 노회 내 여러 지교회 중에 홍연교회 여신도회의 사례만 특별히 언급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1925, “임학준 장로 모친의 금식헌금으로 괘종시계를 헌납한 이야기1926, “홍연교회 무명부인 성종(강대상 )헌납 이야기를 비롯하여, 여신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부인 전도대를 조직하여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내용의 보고 등이 노회 회의록에 남아 있다.

 

또한 1932년 노회록에 홍연교회 여신도들이 윤회기도(輪回祈禱)로 교인을 많이 얻었다는 보고도 눈에 띈다. 하루 24시간 중, 여신도들이 각자 원하는 시간을 맡아 일정한 기간 동안 중요한 기도 제목을 놓고 릴레이식으로 기도하는 윤회기도는 1907평양 대부흥이후, 한국의 열심 있는 교회들이 벌인 일종의 기도 캠페인이었다. 무엇보다, 일제가 중일전쟁(1937)을 일으키고 태평양 전쟁(1941)을 일으키기 직전인 1940년대, 일제의 교회 탄압이 노골화되었던 시기의 군산노회 노회록에도 홍연교회는 부인들의 열성으로 여전하다.”라는 보고가 노회록에 오를 만큼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 ‘홍연학교설립과 부흥회(진흥회)를 통한 교회 성장

 

홍연교회의 여신도들의 교회사랑의 열정과 함께, 교역자 없이도 홍연교회를 지키고 부흥시킨 또 하나의 원인은 홍연교회가 세운 홍연학교와 함께 부흥회와 진흥회를 자주 열어 말씀과 신령한 은혜의 갈급함을 채우고, 동네의 불신 가족들을 전도할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 홍연교회가 세운 남의숙(南儀塾), ‘홍연학교’ - 1925

 

홍연교회는 매요한 선교사의 자문을 받아, 192569일 남자 청소년들의 배움터인 남의숙(南儀塾), ‘홍연학교의 문을 열었다.홍연학교는 나라의 기초교육을 담당할 학교가 마을에는 없었고, 학교가 있는 홍산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 오랫동안 근대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홍연 지역 청소년들에게 오랜 가뭄의 비 같은 희소식이었다. ‘홍연학교가 문을 열자, 새 시대의 문물에 목말랐던 홍연지역의 청소년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문제는 역량 있는 교사들을 확충하는 일이었는데 마침 홍연리 출신으로 기독교 신앙에 충실할 뿐 아니라, 교회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 중이었던 임두준(교장) 임달호(교사) , 두 청년이 이 일을 위해 나섰다. 1930년대 전북노회와 홍산지역 순회전도사로 활동했던 임두준과, 1948년 홍연교회 초대 담임으로 부임한 임달호 목사가 청년 시절, ‘홍연학교의 교사로 40여 명의 홍연지역 청소년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부흥회(진흥회)의 개최

 

홍연교회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진작시키기 위한 부흥 집회를 많이 열었고 1926~1931년까지 5년간 전북 노회록, 시찰 보고에 올라온 홍연 교회의 부흥회 횟수만 5회에 이른 것으로 보아, 홍연교회가 부흥회(진흥회)를 얼마나 중요한 행사로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부흥회를 통해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교회가 부흥을 이루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실제로 필자는 전북노회록을 읽어가던 중, 매년 홍연교회가 부흥회를 통해 놀라운 열매들을 맺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19266월에 모인 진흥회에서는 금식 헌금으로 앞에서 언급한 괘종시계가 올려졌고, 다음 해 1월에는 무명으로 드린 1464전의 난로 헌금이 올라와 난로를 구입하는 일이 일어났다. 19325월의 부흥회에서는 10명의 불신자가 회심하여 교인으로 등록했으며 19335월에 열린 부흥회에서는 온 성도가 은혜받고 성전 건축을 위해 밭 375평을 매입했고 건축비 마련을 위해 교인들이 밭농사를 시작했다.

 

3. 목조건물로 건축한 두 번째 교회당(1936)

 

홍연교회는 19355월의 부흥회를 통해 온 성도가 심령의 큰 감동을 받아, 두 번째 교회당(12, 30)을 목조로 건축하기 시작했다. 홍연교회는 1933년에 매입한 전() 375평에 온 교인이 2년 동안 밭농사를 지어 마련한 기금으로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구입했고 홍연리 산골 마을의 교인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교회당을 건축했다. 1935년에 착공하여 1936년에 완공한 목조 교회당 사진은 뜻밖에도, 수년 전, 세도교회 강경수 장로가 낡은 교회 캐비닛들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충남노회 사진첩(28개 교회분, 년도 미상)’을 교회 이야기를 집필하던 필자에게 보내준 복사본속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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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교회가 두 번째 건축한 목조 예배당앞에서



조직교회와 자립의 문을 연 홍연교회(1945~)

 

홍연교회는 1925년에 임백상, 임학준 씨를 초대 장로로 임직하면서 조직교회가 되었고 1930년에 이르러, 이춘원 목사를 홍산지역 4개 교회들(홍산, 홍연, 홍양, 반교)과 함께 공동 전도목사로 청빙 하면서, 오랫동안의 선교사들의 보호와 양육시대를 벗어나 자립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1. 이춘원 전도목사(1930~1935)와 한국교회의 수난 시대

 

이춘원 목사는 홍연교회가 노회의 청빙 절차를 거쳐 맞이한 첫 전도목사였다. 충남노회의 많은 교회들을 크게 부흥시켰던 이춘원 목사가 공동 전도목사로 부임하면서 홍연교회는 이 시기에 열심 있는 전도와 부흥회를 통해 많은 성장과 부흥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홍연교회는 1925년 임백상, 임학준 씨의 장로 임직에 이어, 이춘원 목사가 부임한 다음 해인 1931, 임용호, 윤상학 씨를 2대 장로로 임직했다. 그러나 꽃 피는 봄을 앞두고 꽃샘추위가 찾아오듯, 일제 말엽에 불어닥친 조선 교회들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와 탄압으로 인해 홍연교회도 한동안 숨을 죽이며 새로운 교회 부흥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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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원 목사                          임달호 목사



2. 임달호 전도목사(1945~1948), 1대 담임목사(1948~1951) 시절

 

임달호 목사는 1945년 충남노회 창립노회 시, 홍양교회와 홍연교회의 공동 전도목사로 청빙을 받아 모() 교회의 치리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 홍연교회는 충남노회 제1회 정기회(194511)와 제3회 정기회(1947)에 각각 장로 2인 가택 청원을 올렸고, 1947, 임두준, 임갑준 씨를 제3대 장로로 임직했다. 그러나 창립이래, 홍연교회가 온전한 조직교회로 세워지게 된 것은 임달호 목사가 1948년 자신이 자란 홍연교회의 첫 담임목사로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홍연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당회를 통해 논의되고, 당회록을 통해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시대의 문을 연 것이다.

 

. 홍연 마을을 덮친 대홍수와 교회 부흥(1948)

 

임달호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1948년 여름, 마을을 덮친 미증유(未曾有)의 홍수로 유년 주일학교 학생 12명이 물에 쓸려 목숨을 잃고, 한 교인 가정의 가옥이 무너져 쓸려간 대참사가 일어났다. 교회에 닥친 가장 큰 환난이었다. 전 교인은 한마음으로 교회에 모여, 슬픔에 쌓인 교인들의 가정을 위로하며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교회는 차츰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찾아갔고, 교회당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2, 이스라엘이 수장절 감사의 나팔을 불었던 시기에, 홍연교회는 지난 한 해를 바라보며 기쁨과 감사의 나팔을 불어 부흥회(강사 홍종흠 전도사)”를 열었다. 그리고 그 부흥회에 하나님의 큰 위로와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 시작했다. 온 성도가 감사와 감격으로 올려드린 예물이 넘쳤고, 교회는 그 헌금으로 비좁아진 교회당을 증축(3) 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홍연교회에 슬픔 대신 희락을, 재대산 화관을부여해 주신 사건이었다.

 

홍연교회가 고난을 이기며 부흥한 열매는 원거리에 있는 수암리지역의 교인들을 분립하여 수암교회를 세운 일로 나타났다. 19493, 5회 충남노회의 시찰 보고에 부흥회 후, 교회 3간을 증축하고 수암리에 교회를 분립시켜, 교회는 빈자리를 배가운동으로 채우며란 보고가 나온다. 교회부흥의 열매로 첫 분립교회를 세운 것이다.

 

. 홍연 마을과 부여 지역을 아우르며 목회한 임달호 목사

 

임달호 목사는 홍연교회를 설립한 첫 6인 중 하나인 임학준 장로의 아들로, 평생 홍연교회를 그의 삶의 앞마당처럼 삼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일제의 탄압과 6.25 동족상쟁의 굴곡진 역사를 관통하며, 그의 인격과 삶으로 교회를 넘어 마을과 부여 지역의 관공서에 근무하는 이들까지 아우르며, 선한 영향을 끼친 지역의 어른으로 살았다. 그래서 충남노회의 산증인인 정규태 목사는 그를 오직 말씀의 원칙대로 올곧고 청렴한 삶을 살았던 선비같은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임달호 목사는 1951년 신웅천교회의 청빙을 받아 홍연교회를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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